온실 나온 김병현, 무엇이 달라졌나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김병현(넥센)에게 지난 시즌은 담금질이었다. 당연한 수순.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은 플로리다에서의 2007년이다. 2008년 피츠버그에 둥지를 텄지만 갑작스레 야구공을 내려놓았다. 재기를 노린 2010년 샌프란시스코에선 방출의 쓴잔을 마셨고, 이듬해 정착한 라쿠텐에선 제대로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4년간 야구에 집중할 수 없었던 셈. 이장석 구단주는 지난해 김병현을 영입하며 “2013년을 기대한다”라고 했다. 김시진 전임 감독과 정민태 전 투수코치의 생각도 같았다. 선발과 구원의 기회를 번갈아 제공하며 다양한 실험을 감행했다. 그런데 주 무대는 2군이 아닌 1군이었다. 메이저리그 출신 스타란 점에 외국인선수를 제외하면 불안한 선발진이 부른 모험이었다. 결말은 좋지 않았다. 김병현은 19경기에서 3승 8패 평균자책점 5.66을 남겼다. 62이닝을 소화하며 내준 볼넷은 34개. 몸에 맞는 볼은 14개나 됐다. 넥센도 전반기를 3위로 마치며 사상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려볼 수 있었지만 6위(61승3무69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수장이자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시진 감독은 시즌 도중 경질됐다. 몸에 좋은 약은 쓴 법. 지난 시즌 자신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맛본 선수단은 여느 때보다 가을야구에 강한 의지를 보인다. 김병현은 더더욱 그렇다. 시즌이 끝난 직후부터 따로 체력을 단련, 심신을 가다듬었다. 당시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10월 2일 목동 두산전에서 김민호 전 두산 주루코치와 충돌해 오른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구슬땀을 쏟은 건 다음 시즌을 온전하게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김병현의 측근은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체력적인 면에서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고 느끼더라”면서 “많은 경기와 긴 이동거리를 거뜬히 소화했던 메이저리그 시절로 돌아가겠단 의지가 강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누구보다 올 시즌을 위해 칼을 갈고닦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병현은 예정된 일정보다 일찍 미국 애리조나 주 서프라이즈 스프링캠프로 향했다. 당초 선발대는 손승락, 문성현, 이보근 등 8명으로 꾸려졌었다. 하지만 김병현이 염경엽 감독과 면담을 갖고 승낙을 받아내 9명으로 늘어났다. 결연한 의지는 지난 1월 7일 인터뷰에서도 발견된다. 당시 20% 인상된 6억 원에 연봉 계약을 체결해 부담을 느끼던 그는 “(넥센이 가을야구를 하지 못한 건) 나 때문이다. 나만 잘하면 된다”며 “지난 시즌 드러난 문제를 반복하지 않겠다. 또 그렇게 된다면 나 자신에게 화가 날 것이다”라고 밝혔다.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자신과 약속은 지켜질 듯하다. 공이 2개월여 사이 크게 달라졌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공 끝. 김병현은 지난 시즌 직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을 던졌다. 변화구는 거의 주효하지 못했다. 직구 평균 구속이 130km대 후반에 머무른 데다 공 끝 움직임이 밋밋해 위력이 반감됐다. 문제는 9월 20일에서야 해결 기미를 보였다. 목동 롯데전에서 50일 만에 선발로 등판해 승리(6이닝 7피안타 1실점)를 챙겼는데 최고 구속이 147km까지 나왔다. 1회 전광판에 149km를 찍기도 했다. 당시 김병현과 호흡을 맞춘 포수 허도환은 “구속도 구속이지만 구위가 크게 좋아졌다. 미트에 꽂히는 느낌부터가 다르다. 컨트롤까지 좋아져 타자를 효과적으로 요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주위의 칭찬 세례에 김병현은 예상치 못한 고백을 했다.“그간 투구 간격이 너무 길었던 것 같다. 코치진으로부터 많은 휴식을 제공받았는데, 그 사이 생각이 많아졌고 잘못된 방법을 많이 썼다. 팀과 내 생각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실마리를 찾은 베테랑. 피나는 노력이 곁들여져 당시 위력은 올 시즌 초반부터 재현될 수 있단 평이다. 김병현은 지난 12일 롯데와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 4이닝 무안타 3탈삼진 4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은 140km. 1년여 전 롯데와 시범경기에서 보인 145km보단 느렸지만 구위와 제구는 훨씬 빼어났다. 특히 바깥쪽 꽉 찬 직구는 두 차례 삼진(용덕한, 박기혁)을 이끌어냈다. 몇몇 직구는 타자 앞에서 살짝 떠오르기도 했다. 공의 회전이 그만큼 많이 걸리고 있단 것. 시즌에 돌입해 구속이 오른다면 더 큰 위력을 기대할 만했다. 변화구의 움직임도 나쁘지 않았다. 이날 김병현은 커브, 슬라이더, 투심패스트볼, 체인지업 등을 던졌는데 이 가운데 커브는 두 가지 색을 띄었다. 타자 앞에서 가라앉는 일반적인 커브와 떠오르는 업슛이다. 본지 김성훈 해외통신원은 “김병현의 업슛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전성기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구종”이라며 “정대현만큼 구사가 가능하다면 올 시즌 타자를 요리하는데 좋은 무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타 구단 투수코치는 “현 컨디션이 상당히 좋다고 할 수 있다. 업슛은 상당한 힘을 요구한다. 허리, 손목 등의 근력이 분명 정상으로 돌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릴리스포인트도 지난 시즌과 달리 내려와 있을 것”이라며 “김병현의 업슛은 떠오르다 떨어지는 정대현과 달리 떠오르다 멈춘 뒤 다시 떠오른다. 구속까지 빨라 타자들이 더 위력적으로 느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첫 시범경기가 극찬 일색이었던 건 아니다. 지난 시즌 가장 큰 숙제였던 제구 불안이 또 한 번 불거졌다. 70개 투구 가운데 볼은 33개.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직구 제구가 무난했던 까닭이다. 한 전직 야구선수는 “김병현의 직구 제구는 꽤 인상적이었다. 경기 도중 밟는 투수판의 위치를 바꾸는 등 다양한 시도로 제구를 조절했다”며 “볼이 된 건 대부분 변화구였다. 변화를 주다 손에서 빠진 것이 많았을 뿐 공의 위력만큼은 날카로웠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어차피 무대는 시범경기다. 아직 모든 걸 보여줬다 보기 어렵다”며 “스트라이크존을 크게 벗어나는 공만 줄인다면 충분히 효율적인 피칭을 기대할만 했다”라고 밝혔다. 이종길 기자 leemea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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