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기록은 무섭게 남는다. 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 9월 어느 날. 한 보수 논객은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싣는다. '대통령과 기자'.제목만으로 유추하면 이 보수 논객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언론의 관계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글을 찬찬히 읽어 보면 요지는 이렇다.박정희 전 대통령은 언론인과의 접촉에서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번은 신문사 정치 담당 논설위원 대여섯 명을 청와대로 불러 거나하게 취할 만큼 술자리를 갖고, 심지어 담배를 권하며 불을 켜줬다는 일화를 전한다. 아마도 이 보수 논객은 박 전 대통령의 '인간미'를 '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모양이다.박 전 대통령의 술자리 일화는 이어진다. 모두가 취하자 박 전 대통령은 "속 시원히 말을 한 번 해보라"고 입을 뗐고, 참석자 중 한 명이 불쑥 '여자관계'를 물었다는 내용이다. 박 전 대통령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글에 없지만 그 만큼 대통령과 기자 자리의 분위기가 부드러웠음을 짐작케 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독재자의 카리스마'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적잖은 충격이기도 했다.시간은 30년 이상 훌쩍 흘렀다. 박 전 대통령의 딸은 18대 대통령에 당선됐고,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쥐었다. 박 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흔적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통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분위기다.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 박 당선인과 언론의 관계는 어떤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박 당선인은 한 달이 넘도록 현판식을 제외하곤 단 한 차례 '용안(龍顔)'을 드러냈다. 그마저도 기자단과의 만남은 아니었다.박 당선인은 오늘로써 일주일째 외부 일정을 일절 잡지 않은 채 삼성동 자택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총리를 포함한 초기 내각 작업에 몰두하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언론과의 관계는 고사하고 국민들 앞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얼굴 보기 힘든 대통령' 꼬리말이 벌써부터 박 당선인에게 붙었다.새삼 10년 전 보수 논객의 칼럼이 머리를 스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대통령과 기자' 제목의 글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이 지나서야 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간담회를 가졌다는 일화로 끝이 난다.박 당선인의 '대통령과 기자'의 서막은 일단 아버지보다는 노 전 대통령에 가까워 보인다. 누구 말마따나 기록은 정말, 무섭게 남는다.김혜원 기자 kimhy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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