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風? 그건 아니다..24년 실적으로 일군 자리'
서울 여의도는 한국 금융투자업계의 성지다. 여의도(汝矣島)라는 지명은 현재 국회의사당 자리인 양말산이 홍수에 잠길 때도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어서 '나의 섬' '너의 섬'하고 말장난처럼 부른 것에서 유래됐다. 너 여(汝)를 쓴 배경이다. 불과 8.5㎢ 에 불과한 조그만 섬에서 인력지도를 그려보면 여성들이 차지하는 면적과 위상은 이보다 더욱 미미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맞아 이제 여성의 섬(女矣島)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애널리스트에서 영업지점장까지 신 여성 파워라인(Power Line)이 꿈틀거리고 있다. 본지는 10회에 걸쳐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증권업계 여성전문인력을 소개한다.<편집자주>
▲ 이명희 한화투자증권 상무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구색맞추기식 여성임원은 원치 않습니다. 실력으로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꿰차는 후배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14일 서울 역삼동 한화투자증권 금융플라자GFC에서 만난 이명희 상무(47ㆍ총괄지점장)는 최근 불고 있는 여풍바람에 대해 조금은 우려스럽다는 말부터 꺼냈다. 증권가 여성임원 1세대를 열어간 그지만 여성이란 '희소성'으로 주목받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쌍용투자증권에서 출발해 HSBC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을 거치며 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최고가 되고자 하는 달려온 24년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 했다.이 상무는 종합주가지수가 한참 활황을 보이던 1989년 증권사에 입사했다. 당시 쌍용투자증권 입사 동기는 12명. 지금까지 현업에 남아있는 사람은 이 상무를 포함해 단 두명이다. "당시만 해도 '남편이 돈 안벌어다 줘?, (임신하면) 그 몸으로 어떻게 직장을 나오냐?'고 노골적으로 묻는 남성직원들이 많았어요. 지금과는 딴 세상이었죠. 참 격세지감입니다."이 상무 인생의 힘겨운 순간은 주식시장과 궤적을 같이 했다. 입사 후 1992년 '깡통계좌' 사건이 발생했다. 할머니들이 지점장 넥타이를 끌고 다니면서 '내 돈 물어내라'고 소리칠 때다. 뒤이어 터진 외환위기, 9ㆍ11테러 등 통제불가능한 변수로 시장이 폭락할 땐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위기의 순간마다 이 상무가 되새겼던 말은 "리스크를 쌓고 있는 중이다. 과거에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하다"는 피셔 블랙교수의 명언이다. 통계적 모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원하는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란 믿음이야 말로 근거 없는 확신이라는 점을 깨우치게 됐다. 이 때부터 변동성에 직면할 때 당황하지 않고 우선순위와 중요도를 고려해 장ㆍ단기 투자 전략을 세울수 있었다.여성 임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가슴에 새겼던 말은 '차별화'와 '자신감'이다. "인상이 조금 날카롭다는 핸디캡이 있었어요. 고객들 앞에서 소탈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싶었죠. 고객들과 차를 마실 때도 녹차나 커피 대신 '아 시원한 물한잔 주십쇼!' 라고 했죠." 외국계증권사에서 삼성증권으로 옮길 때는 인사담당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 "기혼녀라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소중한 내 이력서를 보내기 싫은데, 결혼한 여성에게도 기회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내 몫을 하지 못한다면 회사를 나가겠다'는 강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인정과 존중을 받는 리더'가 되는 것이다. 이 상무는 "24년간 증권업계에서만 종사했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가지 분야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한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경영인은 자기 분야를 초월해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질을 갖추는 리더가 되는게 제 꿈입니다." 구채은 기자 faktu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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