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연 패션협회장 ''패션주권' 빼앗긴 韓, 현실 직시해야···'

원대연 한국패션협회 회장

[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혹독한 불황, 글로벌 패스트패션(SPA)과 해외 럭셔리 브랜드에 '패션주권'을 빼앗기다시피 한 한국 패션시장. 2013년 새해를 맞아 한국패션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묻고자 한국 패션시장의 어른인 원대연 한국패션협회장을 찾았다. 서울 성수동에 새 둥지를 튼 한국패션협회 사무실에서 원 협회장을 만났다. 원 협회장은 한국 패션시장이 직면한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외국 브랜드들이 많이 들어오고 해외 여행도 많이 다녀보니 국내 소비자의 눈높이가 크게 높아졌다. 자라, 유니클로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국내 패션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고 우리 업체들도 뒤늦게 SPA를 만들고 있지만 극소수다. 다수의 국내 브랜드가 글로벌 대기업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소비자는 이미 시장 원리에 의해 싸고 질 좋은 곳으로 쏠리고 있다. 먹고 먹히는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지금 현재 상황을 업체들이 직시해야만 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스스로 체질 개선을 하고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원 협회장은 해외 고가 사치품 브랜드들이 국내 시장에서 '명품'이라 불리면서 유통시장의 갑(甲) 노릇을 하고 있는 풍조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질타했다.“명품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 쓰이고 있다. 호화사치품이라고 불러야지, 명품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90년대에는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누가 몇백만원짜리 옷이나 가방을 샀다는 게 뉴스거리였다. 신문에서 대서특필을 하고 비판을 받는 일이었다. 삼성이라든지 대기업에서 고급 여성복이나 보석을 수입해서 판다고 하면 몰매를 맞았다. 대기업이 호화 사치품을 선도해 판다고 하면서 매도의 대상이 됐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고가 사치품이 '명품'으로 둔갑해 사회에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명품'이 무엇인가. 수십 년간 업계에 종사한 장인들이 한 피스식 손수 만든 것이다. 에르메스 정도면 명품이라고 불릴 수 있겠지.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일부 명품이라는 브랜드들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제품이다. 싸구려 유럽 브랜드들도 다 명품으로 둔갑해서 너도나도 명품대접을 받는다. 소비자들이 착각을 하고 있다. 유럽 브랜드는 다 좋고 비싼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왠지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이 사회분위기가 조장을 하고 광고도 없이 명품이라는 한마디에 소비자들이 산다. 백화점들이 외국 브랜드에 사정사정을 해서 유치를 해 오고 우리 브랜드 10개 면적을 사치품 업체 하나에 내주고 만다. 수수료도 파격적으로 감면해 주고 인테리어까지 공짜로 해주고 모신다.”토종 패션 브랜드들이 국내 백화점 성장에 일조를 했는데 이제와서는 '왕따'가 되다시피 하고 있다고 원 협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해외 고가 사치품 업체들이 국내의 고용 증가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외국 브랜드는 국내 생산도 안 하고 원·부자재도 국내서 안 산다. 자기들이 생산해서 만든 완제품을 국내 유통에 들여와 고가로 팔아 많은 이익을 남겨서 가져간다. 외국 브랜드라고 배척해서는 안 되지만 국내서 많은 이득을 취하는 만큼 국내 브랜드 못잖은 역할과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아직까지는 비판받아야 할 점이 많다. 언론이나 학계에서도 명품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수십 년 된 전문성 높은 장인이 도자기 만들어 마음에 안 들면 깨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명품이다.”그는 국제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없다는 점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15년 전부터 이런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9년 전쯤 패션협회가 주관해서 세계적인 월드스타 디자이너를 만들자고 의견을 모아 위원회를 구성해서 위원으로 참여를 하고 월드스타 선정작업을 했다. 그분들이 재능은 뛰어나지만 재정적으로 빈약하니까 도와주는 방향으로 해서 키우자는 취지였다. 지식경제부와 서울시의 예산 지원을 받아 3명의 디자이너를 선정해 지원을 했다. 그런데 또래의 많은 디자이너들이 선정이 잘못됐다고 탄원을 하고 정부 관계자들이 놀라서 1~2년 지원 후 제도를 없애버렸다. 우리나라 사람들 배 아프면 못 산다. 불평등하다 싶어도 조금만 밀어주고 조금만 기다리면 자기 차례가 올 텐데….”그는 대기업이 나서서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엄청난 후원금을 들여서 세계적인 골프선수 박세리를 키웠듯이 월드 디자이너 딱 한 명만 나와도 파급효과가 큰데 그 점이 안타깝다. 하나의 상징적인 디자이너가 절실하다. 제일모직이 삼성패션디자인펀드를 만들어 지원을 하고 있고 LG패션, FnC코오롱 등 대기업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한섬, 슈페리어 등 연매출 수천억원의 알짜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나오는 이익의 극히 일부, 5억~10억원가량을 글로벌 인재육성에 투자해야 한다.”박소연 기자 mus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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