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근저당설정비 반환 판결의 의미

대출자들이 부담해 온 근저당권 설정 비용을 돌려줘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이창경 판사는 지난 9월 이모씨가 신용협동조합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근저당권 설정 비용 반환을 놓고 대규모 집단소송이 진행 중이라서 파장이 예상된다.  법원 판결 취지는 명확하다. 근저당권 설정 계약에 적용된 약관은 대출거래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고객에게 전가시키는 불공정하고 신의성실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무효라는 것이다. 담보와 같은 권리취득 비용은 담보권자인 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근저당권 설정 비용은 담보대출 때 발생하는 등록세, 교육세, 등기신청 수수료 등 부대비용으로 대출금의 0.6~0.7%에 이른다. 지난해 7월부터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조치로 금융기관이 부담하는 개정 약관이 시행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소비자원이 고객 4만2000명을 대신해 1500여개 금융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이와 별개로 고객들이 국민ㆍ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의 1심 판결이 다음 달로 예정돼 있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지난 10년간 피해액을 10조원으로 추산했다. 이번 판결과 줄소송을 계기로 금융기관들은 그동안 갑(甲)의 위치에서 무리하게 고객에게 부담시켜온 것들이 없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어제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대출금리 모범규준도 공허하다. 취업ㆍ승진한 고객에게 낮은 대출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음을 적극 설명하겠다는 등의 내용인데 창구에서 얼마나 지켜질지 두고 볼 일이다. 금리인하요구권은 2002년 도입됐지만 은행마다 기준이 달라 실적이 거의 없었다.  지난해 월가점령 시위는 금융권의 지나친 탐욕에서 비롯됐다. 그 전부터 미국에선 금융상품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고 금융기술 발전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는 '금융민주화' 주장이 주목받았다. 재산ㆍ지역 등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금융 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국내에서도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다. 금융기관들은 금융거래 상대방이 하청ㆍ납품업자가 아닌 '소비자'이자 '고객'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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