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박인량 '사주 귀산사' 중에서

탑 그림자 강에 엎어져 물결따라 일렁대고/풍경소리 달을 흔들어 구름 사이로 떨어지네/문 앞에는 손님이 노를 젓는데 넓은 파도 사납고/대숲 아래 스님은 바둑 두는데 하얀 해가 한가롭다 塔影倒江飜浪底 磬聲搖月落雲間 門前客棹洪波疾 竹下僧棋白日閒
박인량 '사주 귀산사' 중에서 ■ 박인량은 송나라에서 요즘 '싸이'처럼 히트한 시인이었고 그의 글을 모은 '소화집(小華集)'도 중국인이 펴낼 만큼 우러름을 받았다. 사주 귀산사는 첩첩 바위산 위에 절이 있고 그 아래는 사방 물이다. 이 절경을 그는 저 탑그림자로 표현했다. 강에 비친 그림자가 파도에 따라 솟았다 내려앉았다 하는 모양을 붙잡아냈다. 앞구절은 발 아래 장면인데 뒷구절은 머리 위로 펼쳐지는 장면이다. 바람에 철로 된 풍경이 울리는데 재르릉거리는 소리가 달을 흔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청각이 시각을 잡아물면서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더니 흰 구름 사이에서 소리가 꺼져간다. 숨이 터억, 막힐 듯한 기절처(奇絶處)이다. 절문 앞에 들이나 산이 있는 게 아니라, 코밑에 강이 있으니 급박한 물살에 길손이 노를 젓고 있다. 그런데도 절 안 대숲에는 느긋한 햇살 아래 앉아 바둑삼매경이니 딴 세상이다. 저 대비(對比) 속에 고요가 더욱 고요해진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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