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터뷰. 한여울기자
인터뷰. 최지은
사진. 이진혁
편집. 이지혜
“젊은 시청자들한테 신파 내지 올드한 내용으로 보일까봐 제목을 [아버지]에서 [추적자]로 바꿨다.”
인기 아이돌 캐스팅이나 PPL, 해외 판매용 기획 등 드라마를 통해 수익을 내기 위한 고민이 많은 상황에서 대본만 믿고 편성한다는 게 오히려 신선하다.김영섭 CP: 아이돌이 출연하는 드라마도 필요하다. 해외 판매가 유리해 제작비를 보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드라마가 도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추적자> 같은 드라마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근 1~2년 사이 드라마를 보면 배우 만 유명하다고 무조건 성공하지도 않는다. <옥탑방 왕세자>도 초반엔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희명 작가의 대본에 분명 새로움이 있었고 박유천이라는 좋은 배우도 들어왔기 때문에 자신 있게 밀어붙였다. 결국 드라마의 본질은 이야기의 힘에 있다. 이야기의 종류와 그것을 담는 형식은 다양할 텐데 <추적자>처럼 정치, 사회를 깊이 파고들면서 장르성도 강한 작품이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대중이 그런 종류의 이야기와 형식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했나. 김영섭 CP: 처음 기획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배경이 대선이라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담았다. 끝내고 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그런 부분에 대한 시청자들의 수요가 많이 있었다고 느꼈다. 장르성이 강한 부분은 충분히 어필할 거라고 예상했다. 요즘 대한민국 드라마의 새로운 경향 중 하나가 장르물이 본격적으로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는 거니까. 그래서 제목도 <아버지>에서 <추적자>로 바꿨다. 분명 미드 <24>처럼 긴장감 있게 갈 수 있는 작품인데 그 제목 때문에 젊은 시청자들한테 신파 내지 올드한 내용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장르물 느낌이 나는 제목을 정하자, 대선까지의 이야기니까 < D-108 > 어떠냐 했는데 그건 또 작가와 감독이 싫다더라. (웃음) 그 때 작가가 <추적자>란 제목을 꺼냈고 거기에 ‘THE CHASER’를 붙이게 됐다. <추적자>처럼 사회 현실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유령>도 호응을 얻고 있다. 월화에 이어 수목까지 어렵고 딱딱할 수 있는 드라마를 편성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김영섭 CP: <유령>은 작년 <싸인>의 성공을 보고 편성한 경우다. 장르성 강한 드라마도 잘 만들기만 하면 충분히 먹힐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다만 초반에 눈길을 잡아야 하니까 소지섭이라는 배우를 선택하고 사이버 수사대의 이야기를 쉽게 비주얼로 구현하도록 했다. 첫회를 보게 만들면 된다고 봤다. <유령>이 그리는 현실도 우리가 처한 현실이니까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방송사 내외부에서는 월화수목 다 수사물로 가는 데 대해 걱정이 태산이었다. (웃음) 하지만 난 아무리 어두운 드라마라고 해도 정말 재밌으면 다 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만드는 게 중요한 거다. <H3>“대중문화에서 기획이란 반 보만 앞서 가는 것”</H3>“작년 [뿌리깊은 나무]부터 올해까지 SBS 드라마 좋다고 한다. 이건 돈으로 셀 수 없는 가치다.”
그러면 대중이 원하는 드라마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올 해 SBS 미니시리즈는 사회성있는 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에서 동시에 호평을 받았다. 김영섭 CP: 요즘 시청자들은 <추적자>처럼 완전히 현실과 소통하는 드라마, 아니면 완전히 가상과 판타지를 그리는 드라마를 원하는 것 같다. SBS는 지상파이기 때문에 다양한 드라마를 만들 의무가 있으니 그 두 가지 길을 왔다 갔다 하는 거다. 8월 방송될 <아름다운 그대에게>처럼 방학을 맞이해서 학생들을 위한 기획, <옥탑방 왕세자>처럼 타임워프를 활용한 로맨틱 코미디도 하고 동시에 <추적자>, <유령>, <싸인>처럼 현실을 드러내는 것도 만든다. 다만 이 모든 드라마를 좀 더 새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기존의 생각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새롭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무조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성공적인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시청자 분석이나 사회 흐름을 읽어야 할 텐데, 주로 어떤 걸 보고 판단하거나 예측하나.김영섭 CP: 능력을 가진 인재들에게 좋은 기획 방향을 잡아줘야 하는 게 CP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장의 흐름을 읽고 시청자들의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신문과 TV를 본다. 얼마 전 < MBC 스페셜 >에서 여자들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런 걸 보면서 ‘도대체 요새 여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들이 원하는 건 무엇일까.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 하는 식으로 계속 생각을 하는 거다. 드라마의 피드백도 체크한다. 시청자의 생각은 늘 앞으로 나갈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반응을 보면서 시청자가 다음엔 무슨 생각을 할까, 바라는 게 뭘까 고민한다. 예를 들어 ‘내년에도 영웅이 또 필요할까? 디지털 시대에 혼자 살면서 가족에게 기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다면 아날로그 감수성이 더 먹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기획을 객관화하는 거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 그들이 못 본 걸 어떻게 끄집어내느냐가 중요하다. 대중에게 너무 낯설지도, 너무 식상하지도 않게 다가가야 한다는 점에서 객관화의 기준을 잡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새로운 기획일수록 경영진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 김영섭 CP: 당연하다. 그래서 대중문화에서 기획이란 반 보만 앞서 가는 거다. 예를 들어 <시티헌터>는 일본 만화가 원작이지만 우리나라 이야기라고 느끼게 하기 위해 아웅산 테러, 등록금 문제가 들어간다. 그렇게 기획이라는 건 앞서 갈수록 보완장치도 갖고 가야 한다. 그리고 경영진은 그동안 성공한 결과로 믿게 만들어야 한다. ‘아, 쟤가 기획하면 되더라’하는 믿음을 주면서 책임지는 거다. 배우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복제 안 하는 새로운 기획이라면 총대매고 책임져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다. 그래도 방송사 입장에선 작품성은 좋은 드라마보다 당장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이를테면 해외 수출용 드라마를 원할 수도 있을 텐데.김영섭 CP: 물론 민영 방송사로서 재원이 되는 광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에 가장 적극적인 20~49세 시청자가 주요 광고 타깃이고 그들의 시청률도 항상 분석한다. 하지만 돈 되는 드라마만 할 수는 없다. 나름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람들이 작년 <뿌리깊은 나무>, 올해 <추적자>를 보고 “SBS 드라마 좋다”고 한다. 이건 돈으로 셀 수 없는 가치다. 물론 돈까지 벌어주면 좋겠지만 이렇게 SBS 드라마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면 콘텐츠도 비싸게 팔리기 마련이다. 최근엔 해외 시장도 잘만 만들면 언제든지 비싸게 팔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주요 판매 기준이 한국에서의 시청률이라 우리가 잘 만들고 시청률 나오면 나중에라도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으로 말하면, 가시적인 수익이나 수출을 노리고 만든 드라마도 반드시 성공한다고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인 건가.김영섭 CP: 그렇다. 한국 드라마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일본인데, 일본 시청자들은 배우 얼굴만 보고 있을까? 아니다. 스타에 기대지 말고 드라마의 본질, 이야기의 힘을 다져야 한다. 예전엔 정말 좋은 드라마만 일본으로 수출됐지만 요샌 아니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인데 그걸 깨뜨리면 안 된다. 일본 콘텐츠를 리메이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 드라마는 시츄에이션이 강하고 한국 드라마는 연속성이 중요한 것처럼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저작권 사서 원작 그대로 따라하면 누가 그 드라마를 보겠나. 국내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모티브만 가져와 참신하게 변화시켜야 된다고 생각한다. 마구잡이 수출이나 수입은 이제 정말 지양해야 한다. <H3>“늘 새롭게 도전하는 걸 즐긴다”</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