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박목월의 '윤사월'

송홧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집/눈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고/엿듣고 있다.
박목월의 '윤사월'■ 목월시인은 우리 마음을 '외딴' 봉우리로 가둔 뒤, 그것도 모자라 다시 그 봉우리의 '외딴'집으로 데려간다. 거기 무엇이 있길래. 거기엔 산지기의 딸이 있다. 봉우리와 집으로 우릴 격리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목월은 아예 이 산지기 딸의 눈먼 눈꺼풀 속으로 우릴 다시 격리시킨다. 이 아름답고 권태로운 산중의 풍경을 볼 수 없는 이 처녀는 그러나 수줍고 설레는 마음으로 귀를 열고 풍경을 '듣고' 있다. 이 시의 주인공은 어쩌면 꾀꼬리 소리다. 봉우리를 울리는 이 새의 소리는 외딴집 속으로도 흘러들어가 눈먼 처녀의 귀에도 어떤 파문을 불러 일으킨다. 이 신비한 파동의 설레임이야 말로 이 시를 아름답게 전율시킨다. 이 꾀꼬리 소리는 눈먼 처녀의 귀를 지나 다시 목월의 귀를 지나 이 시를 읽는 모든 마음의 귓전을 울리는 맑고 여린 순정음(純正音)으로 확산된다. 소리가 유통되는 놀라움, 천상의 음악, 혹은 원초적 메시지의 설레임. 목월의 이 시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채록한 문자비(碑)이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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