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함께 울고 웃었던 영화들

‘꽃중년’, ‘중년돌’, ‘요즘 대세’. 조성하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보면 주르륵 달려 나오는 결과들이다. 성균관의 아이들을 아낀 인자한 정조(<성균관 스캔들>)나 젠틀하고 지고지순한 재벌 2세(<욕망의 불꽃>)에 이어 ‘1박 2일’, <놀러와>를 통해 선보인 예능감과 영화에서의 존재감까지 조성하는 매번 다른 매력을 꺼내놓았고, 그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그는 “촬영 끝나고 밤새고 바로 미용실 가서 머리하고 다시 나오는” 스케줄에 인기를 실감할 새가 없다. “싸인을 택배로 보내달라”는 형의 부탁을 직접 우체국에 가서 수행할 정도로 여전히 유명세에 대한 의식보다는 심부름에 대한 열의가 더 크다. 최근 출연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 4800여개에 달하는 댓글이 달리고서야 “아, 내가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람이 됐구나” 느꼈다는 조성하는 달콤한 인기보다 새로운 고민에 더 집중한다.“요즘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에요. 어떤 작품을 만날까 하는 기대가 있다면 새로운 캐릭터를 또 어떻게 제시할까 하는 걱정도 있어요. 인물들을 계속해서 식상하지 않게 펼쳐 나가야 되는데 자꾸 했던 것만 시킬까봐 걱정이죠. (웃음) 남들이 ‘와’하고 함성을 질러준다고 그게 결국 저를 위한 함성일까요? 저를 죽이라고 하는 함성일 수 있으니까 (웃음) 더 정신 차리게 되죠. 그래서 앞으로의 여행이 더 궁금해요. 연기란 게 어디 목표를 정해놓고 가는 여행이 아니잖아요. 무전여행하고 똑같아요.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기 위해서 처절하게 가는 거죠. ‘1박 2일’처럼. (웃음)” 그러나 <화차>의 조성하를 보면 그런 걱정은 잠시 접어둬도 좋을 것 같다. 사촌동생 문호(이선균)의 사라진 약혼녀 경선(김민희)을 찾아다니는 전직 형사 종근은 실제 노숙자 역할도 해봤던 그조차도 “흙중년”으로 부를 만큼 “폐인클럽 회장”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경선의 과거를 추적해가면서 그녀에게 “내면적인 동질감을 갖고, 연민을 느끼는” 종근은 관객과 가장 맞닿아있다. 그리고 경선이 풀어놓은 감정의 끈을 꽉 움켜쥐고 따라간 종근 덕분에 영화는 보는 이들과 단단하게 연결된다. 다음은 <화차>에서는 “문호와 경선 사이에서 중심을 잡느라 이성적”일 수밖에 없었던 조성하가 이성의 끈을 잠시 놓고 함께 울고 웃었던 영화들이다.<hr/>
1.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1999년 | 로베르토 베니니“로베르트 베니니를 마냥 웃기기만 한 코미디언으로 알기 쉬운데 <인생은 아름다워>는 잘 만든 한 편의 블랙코미디죠. 전쟁을 바탕에 깔고,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이야기잖아요. 영화를 보면서 내내 저렇게 아름다운 일이 정말로 있을까? 감탄했어요. 아빠와 아들의 천진함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전쟁의 아픔이나 고통을 이야기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물론 마지막 부분에서는 참 많이 울었죠. (웃음)”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영화가 있지만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을 유머로 버무려낼 수 있는 사람은 로베르토 베니니 뿐일 것이다. 감독이자 주연으로 활약한 베니니는 전쟁과 유대인 학살이라는 광풍에서 아들을 지켜내는 아버지로 눈물과 웃음을 고루 뽑아낸다. 199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2. <집으로...> (The Way Home)2002년 | 이정향“<집으로...>나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영화의 정서가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따뜻한 아빠에 대한 향수,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들요. 저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정말 슬펐거든요. 할머니의 유골함을 껴안고 얼마나 울었던지 소리도 나지 않고 계속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리고 얼마 안 되서 이 영화를 봤는데 비까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죠.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 다 훌쩍이는데 저는 엉엉 대성통곡을 했죠. 옆에 계신 아주머니가 이상한 사람으로 볼 정도로요. (웃음)”<집으로...>를 보고도 웃지 않거나 울지 않을 수 있는 관객이 있을까? 국민 남동생 유승호의 어린 시절 모습에 ‘엄마 미소’를 짓다가도 손자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뒷모습이나 글을 읽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한 손자의 편지처럼 영화에는 울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순간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3.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1998년 | 제임스 L. 브룩스“<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소설가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거기서 잭 니콜슨을 너무 좋게 본 거죠. 저렇게 스크루지처럼 나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아이 같은 천진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아름답고 예뻤어요. 그런 변화를 저렇게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아직도 제 안에는 멜로 꿈틀꿈틀 합니다. (웃음)”강박증에 시달리는 괴팍한 소설가 멜빈(잭 니콜슨). 그는 주변 사람들을 깔보고, 조롱하며, 믿지 않는다. 그러나 곤경에 처한 이웃과 친절한 웨이트리스 캐롤(헬렌 헌트)로 인해 조금씩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마침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멜빈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아지와의 우정, 캐롤과의 로맨스는 언제 보아도 따뜻하다.
4. <집시의 시간> (Time Of The Gypsies)1993년 | 에밀 쿠스트리차“<집시의 시간>은 오래 전에 본 영화라 지금까지 큰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시에는 이 작품을 보면서 집시들의 삶의 굴곡이 크게 다가왔어요. 우리와 전혀 다르게 사는 세계의 사람들이지만 그들만의 세계관이 명확히 있고, 이런 것들을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이 잘 표현했던 것 같아요. 영상미 자체도 훌륭했고요. 이때가 아마 감독이 가장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내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1989년 칸 영화제에서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겨주며 일약 거장의 반열에 올린 출세작.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집시 청년의 유랑은 괴이하기까지 하지만 묘하게 아름답고 슬프다. 전문배우가 아닌 실제 집시들의 춤과 노래 또한 빼어나다.
5. <대부>(The Godfather)1977년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대부>는 연기자들에게 있어 교과서 같은 작품이에요. 열정적인 광기와 전혀 힘을 주지 않음에도 강력함을 보여주는 연기가 정말 어마어마하죠. 거기에 한 개인을 넘어서 조직의 사회성까지 보여주고요. 영화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대부>에 들어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다양한 캐릭터들 하나하나에 눈을 뗄 수가 없죠. 모든 시리즈가 훌륭하지만 저는 1편을 가장 재미있게 보았습니다.”설명이 필요 없는 명작 중의 하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 의해 탄생한 <대부> 시리즈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력한 명성과 생명력을 얻고 있다. 시칠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갖은 굴욕 끝에 마피아의 보스가 된 돈(말론 브란도)처럼.<hr/>
연극 무대를 거쳐 드라마로, 영화로 옮겨 갈 때마다 몸집이 커지는 중년 배우들의 어떤 그룹에서 현재, 가장 핫한 인물인 조성하. 연극을 하면서 배고픈 시절도 있었고, 처음 드라마를 할 때는 카메라 앞에서 당황하기도 한 그가 연기자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의미 있을 문장을 남겼다. “저도 아직 신인 배우라고 생각해요. 방송은 이제 7년차고, 영화가 10년, 메이저는 2년차 밖에 안돼요. (웃음) 이제 마라톤 출발 선상에 선 느낌이죠. 여태까지 10km, 20km 달리면서 몸 푼 거고 비로소 42.195km 달리는 걸 앞두고 있어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고 자기 세계를 만들다 보면 분명히 자체발광하는 때가 와요. 조성하도 해내니까 누구든 다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굉장히 작은 사람이었고 이렇게 쉬지 않고 왔기 때문에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 딴 짓 하지 마라. 답은 그거 하나죠.”<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이지혜 seven@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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