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나의 캐디편지] '바람 부는 날~'

우리 골프장은 몇몇 코스가 서로 인접해 있습니다.간혹 고객께서 친 공이 붙어있는 홀로 넘어가더라도 그 곳에서 다음 샷의 플레이가 가능한 까닭입니다. 그래서 캐디들은 이런 상황이 생기면 옆 홀에 있는 다른 팀의 고객께서 공을 오인하고 주워갈까봐 신경이 곤두섭니다.가끔씩 바닷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공 때문에 우리 홀에서 옆 홀로, 또 옆 홀에서 우리 홀로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날은 공을 치는 고객이나 따라다니는 캐디들이나 우왕좌왕 정신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남의 홀인 옆 홀에서만 플레이하다가 그린에서야 만나는 고객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강풍이 몰아쳤던 날이 있었습니다. 이미 고객과 캐디 모두 정신을 놓은 상태였죠. 마지막 18번홀, 아주 거리가 긴 파5홀에서 우드로 100m씩 끊어가는 고객들과 가까스로 그린에 도착할 무렵 옆 홀에서 노란색 공이 하나 넘어왔습니다. 무전기에서 그 팀의 캐디가 "18번홀 캐디님 노란 공 하나 건너갔는데 고객께서 가시니까 확인해 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네"라고 대답한 후 그린 쪽으로 이동하는데 우리 팀 고객이 세 분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그 노란 공 앞에서 어드레스를 취하시려는 고객이 보입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고객님, 그 공치시면 안돼요.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크게 소리 쳐도 바람 때문에 말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가 봅니다. 몇 차례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그 고객께서는 저를 멀뚱멀뚱 보고만 계실뿐입니다. 그때 무전기에서 "캐디님, 그 고객님은 우리 고객님이에요"라고 합니다."엉?" 알고 보니 다른 홀 고객을 우리 팀 고객으로 착각했습니다. 그 고객은 영문도 모르고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우리 고객 한 분은 이미 그린 주위로 가셨는데 그린 언덕 때문에 보이지 않았었나 봅니다. 제가 다른 팀 고객을 애타게 부를 동안 우리 팀 고객들은 뒤에서 저를 불렀다고 하더군요."언니, 나 여기 있어" 바람 부는 날은 캐디도 장님이고, 귀머거리가 됩니다. "어쩔 수 없다고요."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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