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김사인 '조용한 일'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 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것이다■ 모르겠습니다. 겁 없이 많이 나아갔던 것이 엇뜨거 하고 움츠리는 일처럼 이제 많이 조심스럽게 보려 하는 것인지요. '가만히 좋아하는'은, 뜻밖에 모든 의욕들을 다 내리고 난 다음의 무방비 상태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조용한 일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뜻대로 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존재의 꼬락서니를 엉거주춤하게 긍정하며, 그냥 있어볼 길 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 그것을 고마워하는 마음. 이게 좋아하는 마음이란 생각을 이제야 합니다. 내가 그를 형질변경할 수 있는, 팔걷어붙인 좋아함이 아니라 그를 가만히 두고 물끄러미 좋아하는 그 감정의 완전함에 대해 생각합니다. '가만히'가 없으면 좋아함이 얼마나 흉해지는지, '가만히'가 없으면 좋아함이 얼마나 공허해지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인사동에 있던 '가만히 좋아하는'이란 술집은, '가만히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나 봅니다. 이름을 '시인'으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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