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취임 후 첫 공식일정은 노량진 수산시장 방문이었다. 전임 시장들이 국립현충원 참배로 첫 발을 딛던 것과 사뭇 다른 출발이었다. 본인의 평소 철학이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로 풀이된다. 관용차를 이용하지 않고 지하철로 출근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시민들, 특히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이날 박 시장은 시장상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시민과 함께 하는 서울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파격이라 평해지는 박 시장의 시정운영은 '소통'과 '현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민이 시장이다"는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갈등이 야기될 경우 현장을 직접 찾거나 트위터 등을 통해 소수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모습은 전임 시장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다. 지난달 내놓은 정비사업 개선안도 3개월간 50여차례 이상 토론을 통해 끌어낸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박 시장은 워낙 꼬여있는 초대형 사업이라는 점을 통감하고 "해법을 찾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소통을 위해 현장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과정이 직접적으로 해법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현장은 참고나 단서가 될 뿐 해답은 좀 더 큰 틀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뜻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객관성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도 요인이다. 일방적인 의견 청취로 인해 자칫 중심축이 흔들릴 수 있는 이유에서다. 특히 이해득실이 수반되는 개발사업은 물론 상권 등의 민원을 해결하는 데서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상가 분양사업자나 임차사업자 등의 갈등은 복잡다단한 경우가 많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를들어 가든파이브에서 영업을 하는 사업자와 면담을 하는 것은 자칫 여러 분파로 나뉘어 있는 사업자협의회의 운영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면담을 했던 이가 상가협의회 차기 대표로 유력하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실정이다. 좋은 의도로 현장의견을 들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시장이 누구를 밀고 있다"는 괴소문으로 발전해버린 셈이다. 시민단체 리더로서의 박원순이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터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만났을 때는 결과가 달라졌던 것이다.조성한 중앙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현장에서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성을 배제한 소통은 자칫 오해를 사거나 소수의 일방적인 의견만 강조될 수 있다"며 "소수 계층의 요구를 실제 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에서도 다변성에 대비한 계획을 세워놓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탁상머리 행정'이라는 구태를 벗으려는 데만 집중하면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되레 역효과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그렇다고 현장을 포기하란 것은 아니다. 소통은 여전히 필요하다. '닫힌 시정'의 시대는 갔다. SNS를 통해 소통하고 서민들과 부대끼면서 시민과 같이 호흡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즉답을 줄 수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시민들은 많이 달라진 시장을 뽑았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 '라인'을 통한 대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것"을 주문했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는지 여부는, 그 직을 벗고 나서야 깨닫는 법이어서 그렇다.배경환 기자 khba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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