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관객들도 내게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div class="blockquote"><하울링>을 연출한 유하 감독은 송강호의 출연에 대해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했다. 여성과 동물이 주인공인 상업영화를 제작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송강호의 존재는 한 명의 배우가 합류한 것 이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송강호가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송강호가 고른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그의 이름 석 자는 믿음직스러웠다. 신참 형사 은영(이나영)과 늑대개가 교감을 하고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 <하울링>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상길은 그들을 받쳐주는 역할이다. 후배에게도 승진에서 밀리는 만년 형사인 탓에 사건도 고과 점수로만 보는 상길은 송강호 특유의 리드미컬한 연기를 뽐낼 수 있는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아쉬웠던 전작 <푸른 소금> 이후 <하울링>의 조력자로 돌아 온 송강호와의 인터뷰는 왜 이 영화였나를 묻는 것에서, 결국 배우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일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상길은 송강호라는 이름에서 기대되는 것보다는 작은 역할이다.송강호: 비중보다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기존 한국의 장르영화, 형사물에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면이 있었다. 주류적인 느낌이 아니라 언더적인 감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매력적이었다. 원작소설부터 여형사가 주인공인 작품이다. 그래야 하는 이야기고. 처음 시나리오도 거의 은영 원탑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영화적인 재미나 풍성함을 더 갖추려고 유하 감독님이 각색을 하시다보니 조력자라기보다 파트너로 비중이 커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좀 애매한 지점이 있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상길이 좀 사라지는 대신 은영 본연의 모습이 많이 돋보여야 하니까. 상길에 대한 첫인상은 수동적이다. 자신의 고집으로 벌어진 일로 은영이 뺨을 맞는데도 나중에야 어기적거리며 나타나는 장면에서 딱히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이 드러났다. 송강호: 사실 이 영화가 웃음이나 상업적인 코드로 갈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 장면을 굉장히 웃기게 연출할 수 있는 건데 감독님은 변형적인 모습보다 진지한 시선을 견지하고 싶어 하셨고 나도 그걸 존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이상의 영화적 재미를 위해 연출한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 작은 찰나 같은 장면들이 주는 이미지가 이 영화를 분명하게 구축한다고 생각한다. 책임은 분명히 선배 남자 형사인 상길에게 있는데 만만한 게 후배 여형사다. 단순한 이분법적인 남녀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회적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약자이기 때문이고, 약자여도 그녀가 남자였으면 그렇게까지 심하게, 모멸감을 느끼도록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H3>“연기는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작업”</H3>
약자라는 측면에서 상길도 조직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진 약자다. 송강호: 예전에는 그런 입장에서 항상 페이소스를 연기했었지. <효자동 이발사>의 이발사나 <반칙왕>의 소시민적 프로레슬러 같은. <우아한 세계>의 조폭도 어딘가 약자의 느낌이 있고. 약간 페이소스를 담아내고 그걸 통해 많은 이미지를 전달했는데 <하울링>은 현실을 담담히 표현하는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른 느낌의 연기였다. 예전의 패턴이었다면 상길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나 말로 관객을 웃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것이 이번 영화에서 아~주 작은, 보이지 않는 변화라면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늘 열연한다기보다 냉정하고 지적으로 캐릭터에 접근하는 것 같은데 보고 있으면 뜨거웠던 게 페이소스 덕이었을까? 송강호: 웃다가 슬퍼지기도 하는 느낌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으니까. 이번 영화도 만약 상길의 이야기였다면 좀 더 나아갔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은영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 정도 선까지 표현하는 것, 거기서 멈추는 게 맞았다. 하지만 주연 배우의 에너지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로 아는 거랑 몸이 되는 건 다를 수 있는데 주인공의 에너지가 익숙했던 사람으로서 더 나간 적은 없었나?송강호: 사실 본능적으로 움찔 움찔 하지. ‘아, 이거 되게 재밌게 끝낼 수 있었는데’ 싶은 장면들도 많았다. 그 장면의 진지함과 심각함을 충분히 관객에게 인지시키면서도 유쾌하게 끝낼 수 있는데 움찔하는 부분이 늘 있었지. 하지만 그런 것들이 쌓이면 작품이 훼손되니까. 그건 나도, 감독님도 원하지 않아서 순간적으로 관객에게 더 큰 카타르시스를 못 줄 지라도 작품이 가야할 방향을 제대로 잡고 가지 않았나 싶다. 상길은 정의감보다 생계로 움직이는 형사다. 현실적이지만 영화적으로는 좀 뻔한 설정일 수도 있다. 비중을 차치하고서도 이 역할을 맡은 이유가 궁금했다. 송강호: 작품을 하면서 중복되는 이미지들이 있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 하더라도 한 부분이라도 일정 정도 의미가 있다면 도전해볼 수 있다. 스포츠 게임처럼 45분 지나면 땡! 하고 끝나고 승부가 갈리는 작업이라면 매 작품마다 선택의 폭이나 결단을 내리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연기라는 건 10년, 20년 자연인 송강호가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작업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매 작품마다 어떤 획을 그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작품은 설렁설렁 넘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기적인 마음이라기보다 하나의 지나가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앞으로 만날 수많은 작업에서 배우로서의 입체감이 나올 수도 있고. 스스로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자유로운 생각을 갖고 있는데 보는 입장에서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늘 획을 그어왔다. (웃음) 송강호: 그래서 <푸른 소금> 때도 더 맹렬한 비판과 지탄을 받은 것 같은데. 읏하하하하하. ‘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런 실망감을 안길 수 있어?’라는 반응이 다른 배우, 다른 영화보다 두세 배 더 클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그 동안 흥행을 떠나서 어쨌든 늘 화제작에 출연했으니까. 다만 하고 싶은 얘기는 어떤 작품이든 방만하게 방관하듯 한 적은 없다는 거다. <푸른 소금>은 물론이고 이번 <하울링>도 나름대로 의미를 찾았고 그걸 갖고 작업을 했다. 결과가 좀 안 좋았던 때도 있고 그 순간에는 아쉽지만 후회는 없다. <H3>“작품을 결정할 때 감독의 취향이나 가치관이 중요하다”</H3>
<푸른 소금>도 두헌이라는 인물 자체는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을 것 같더라. 작품 자체에 대한 얘기가 많다보니 연기에 대한 얘기는 충분히 못 했다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 배우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송강호: 그래서 다들 시나리오, 시나리오 하는 거다. 대본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리 배우가 노력한다 한들 한계에 부딪힌다. 그런데 배우들이 대개 90% 이상 시나리오를 보고 결정한다고 하지만 나는 감독의 취향이나 정서, 가치관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에 대한 아쉬움과 문제점이 있더라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유하 감독이나 이현승 감독같이 어느 정도 자기 세계를 만든 색깔이 분명한 중견 감독과의 작업은 어떤 경험이었나? 송강호: 이 분들이 한국 영화에서 엄청난 흥행으로 획을 그었다거나 비평적으로 대단한 평을 받은 작품을 연출한 분들은 아니지만 충무로에서 선배 감독으로 꾸준하게 작업을 해온 분들이라 함께 하고 싶었다. 참신하고 열정이 넘치는 신인 감독과의 작업도 좋지만 역으로 오래 전에 데뷔한 고참 선배 감독과의 작업도 굉장히 의미 있었다. 이 양반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쌓아 온 영화적인 감성 같은 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얘기했듯이 스포츠고 단거리 주자라면 맨날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랑 하겠지만 그런 게 아니니까. 자극을 받고 싶었던 만큼 한편으로는 힘을 실어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송강호: 그런 부분도 분명히 있다. <푸른 소금>은 결과적으로 그게 잘 안 된 경우지만. 읏하하하. <하울링>은 될 것 같다.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 젊은 배우들과 파트너 작업을 계속 한 것도 후배들을 끌어주려는 마음이었나? 송강호: 아니다. 왜 자꾸 여배우랑 하냐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여배우를 좋아해서도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도 아니다. 충무로에서 오래 활동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중년 배우가 되었고, 아무래도 선배보다는 후배가 많이 생기는 입장이라서 그런 거지. 분명히 얘기하고 싶은 건 흔히 배우가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선택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내게 오는 작품 중 선택하지만 큰 범주에서는 감독과 제작자가 배우를 선택하는 거다. 작품의 시기, 당시 상황이나 입장에 맞춰 진행되었던 작업들이 우연찮게 그렇게 된 것 뿐이다. 캐릭터를 대할 때도 그렇지만 작품과 업계에 대해서도 전체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송강호: 당연히 전체를 봐야지. 한 명의 배우지만 <하울링>이라는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이고 작게는 선배 배우니까. 이 작품이 관객들에게 보여질 때 나의 비중이나 책임이 큰 소구력으로 다가갈 텐데. 그런 점에서 나뿐 아니라 다른 어떤 주연 배우도 전체를 봐야하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을 때는 없나? 전체에 얽매이다 보면 그런 재미를 놓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송강호: 그렇지. 하지만 배우로서도 자연스럽게 늙어가지만 자연인 송강호도 늙어가니까 내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는 당연히 생각해야 한다. <H3>“내년 이 맘 때부터는 또 다른 도전을 보실 수 있을 것”</H3>
어느 순간에 나이가 들고 있다는 걸 느끼나?송강호: 일상생활에서는 많이 느낀다. 애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흰 머리가 늘어난다든지. 하지만 영화를 할 때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체력적으로는 액션을 해도 옛날보다 빨리 지치고 밤 촬영할 때 더 힘드니까 옛날과 다르구나 싶지만, 배우로서 나이가 들어가는 건 거의 못 느낀다. 외모나 스타일에서 약간의 변화는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른 건 없다. 항상 기운 찬 모습으로 작품을 해 온 것 같다. 자동차 보닛에 매달린 장면을 보면서 힘들겠구나 싶었다.송강호: 그런 장면들이 좀 그렇지. 그런데 또 사람 마음이 신기한 게 그런 장면이 있으면 또 이상하게 악이 생긴다. 앞으로도 육체적으로는 더 힘들어지겠지만 정신적인 것, 배우로서의 마음은 되게 진부한 표현일지 몰라도 늘 이팔청춘이 아닌가 싶다. 최민식 선배도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나? 올드 보이로 보지 말라고. 읏하하하하하. 멜로 연기도 하실 수 있다고. (웃음)송강호: 그러니까. 배우들은 다 그런 것 같다. <하울링>의 엔딩이 본인 아이디어라고 들었다. 작품 내에서 갖는 의미로는 납득이 되는데, 예전 <의형제>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아쉬운 지점이 있다고 했던 걸 떠올리면 생각이 바뀐 건가 싶었다. 송강호: 그렇다기보다 작품으로 봤을 때 더 나을 것 같아서 제안했다. <의형제> 엔딩의 대중성과 <하울링> 엔딩의 대중성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의형제>에서 가족들과 만나는 게 관객들에게 행복한 결말을 줘서 흥행에는 좋았겠지만 분단이라는 현실로 볼 때 그게 진정 해피엔딩인가, 너무 판타지가 아닌가 싶었다. <하울링>에서는 원래의 엔딩이 더 멋있고 원작의 의미라는 측면에 더 근접한 표현일 수 있겠지만 한 가닥 희망의 끈을 우리가 놓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얘기했다. <의형제> 때는 비정하게 가는 게 영화적으로 좀 더 격이 높아 보인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랬다면 흥행이 그렇게 안 되었을 수도 있어서 불만은 없다. 읏하하하하하. 송강호라는 배우는 작품 선택이든 연기든 영리하게 변화구를 잘 던지는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울링>은 묵직하게 직구를 던진 게 아닌가 싶다. 구속을 스스로 평가한다면?송강호: 원래 직구가 150km/h가 넘으면 메이저리그 급이고 140km/h를 넘으면 한국 에이스들 급인데 나는 130km/h인 것 같다. 직구도 빠른 직구와 느린 직구가 있다. 정말 뛰어난 투수는 빠른 직구를 갖고 있어도 그것만 구사하지 않는다. 그래야 타자들이 현혹되고 타이밍을 못 맞추니까. 뛰어난 투수들은 빨리 올 거라고 생각할 때 느린 직구가 던져 조절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번엔 아주 느린 130km/h 직구를 던지지 않았나 싶다. 스크린 밖에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배우의 아우리가 유지되는 반면, 온전히 스크린에서의 모습만으로 평가받는다. 봐주는 게 없어서 더 가혹할 때도 있을 텐데. 송강호: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관객들도 일정 부분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지금 16년 째 영화를 하고 있는데, 1년에 한두 편 씩 영화를 계속 하는 배우를 봐 오다 보면 이게 저건 것 같고 그게 그건 것 같은 거지. 사람에 대한 피로감이 분명히 작용한다고 본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거고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변화라는 측면에서 배우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 넌센스다. 배우의 연기는 그런다고 변하는 게 아니다. 항상 진심으로 작품과 배역을 대하고 연기하고 그 진심이 통했을 때 작품마다 좋게 봐 주시는 것이지 스스로 전작의 이미지가 이랬으니까 이번에는 이렇게 해야지 하는 건 할 수도 없을뿐더러 연기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기작으로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송강호: 곧 촬영에 들어간다. <하울링> 개봉하고 체코에 한 번 갔다가 다시 왔다가 3월 20일 정도에 완전히 넘어가서 4개월 정도 현지에서 촬영한다. 전작에서 다음 작품으로 편하게 넘어가는 편인가?송강호: 촬영 끝나면 손을 놓는다. 개봉하면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빠른 정도가 아니라 오늘 끝나면 그 순간 방금 했던 대사도 생각 안 난다. 읏하하하. 나도 오랫동안 배역에 빠져들어서 방황도 하고 그러고 싶은데 돌아서면 잊는 스타일이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을 했든 비평적으로 좋은 작품을 했든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배우 본인에게는 부담이겠지만, 송강호라는 이름은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운 브랜드다. 전략을 짜서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계속 잘 관리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송강호: 그런 점에서 지금 예정되어 있는 작품들이 관객들의 마음이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설국 열차>도 있지만 그보다 개봉은 앞설 사극 영화도 있다. 첫 사극이다. 장르 영화인 <하울링> 이후, 사극과 <설국 열차>까지 역시 일부러 선택한 라인업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보시는 분들의 피로감이 많이 씻길 것 같다. 내년 이 맘 때부터는 송강호란 배우의 또 다른 도전을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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