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가는길] 연휴, 볼거리를 찾아서 - TV, 개봉영화, 공연 등 '必見' 추천작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설이다. 설은 오랜만에 가족 전부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일년 중 몇 안 되는 대한민국 최대 명절이다. 그러나 즐거운 연휴 기간에도 잠시 공동화(空洞化)된 도심을 지켜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함께 옛날 이야기를 나눌 친척친지도 윤기 흐르는 다채로운 명절 음식도 없다면, 마음을 살찌우고 정서에 온기를 불어 넣을 ‘고품격’ 문화 생활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개봉 영화, 공연, TV 등 세 가지 영역에서 아시아경제 문화 담당 태상준 기자가 그 많고 많은 작품들 중 후회하지 않을 수작들을 엄선했다. Movie부러진 화살1월 19일 개봉 | 감독_정지영 | 출연_안성기, 박원상, 나영희, 김지호 외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등 충무로의 대표적인 중견 감독 정지영이 ‘까’(1998) 이후 무려 13년 만에 연출한 회심작.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석궁 테러 사건’을 내러티브로 한 법정실화극으로, 두 얼굴의 사법부와 상식 없는 세상에 원칙으로 맞서는 남자의 이야기다. 억울하게 대학에서 해고된 김경호 교수(안성기 분)가 교수 지위 확인 소송에서 패소하자 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그를 위협한다. 현장에서 수거했다는 부러진 화살이 살인 미수의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되지만 김 교수는 결백을 주장하며 사법부와 대립하고 사건은 일파만파 퍼진다.무겁고 따분한 법정 드라마는 한국에서는 흥행이 잘 안 된다는 속성이 있다. ‘백전노장’ 정지영 감독은 원리원칙주의자 김 교수와 ‘날라리’ 알코올 중독자 변호사 박준(박원상 분)의 확연한 캐릭터 대비와 둘의 옥신각신하는 좌충우돌기로 극에 재미를 준다. 시종일관 코믹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부러진 화살’은 극 말미 ‘결정적 한 방’을 통해 강렬한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안긴다. 2011년을 뜨겁게 달군 ‘도가니’에 이어 ‘영화는 힘이 세다’는 것을 온 몸으로 입증하는 작품. 안성기, 박원상, 나영희, 김지호 등 배우들의 앙상블도 환상이다. 그밖에는…… 설 연휴 극장가는 전통적으로 온 가족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영화들이 강세이기 때문이다. 황정민, 김명민, 엄태웅 등 충무로를 대표하는 세 명의 남자배우들이 이름 석자를 걸고 극장가에서 맞선다. 평단 평가는 황정민, 엄정화 주연의 코믹 드라마 ‘댄싱 퀸’이 우세다. 우연히 서울 시장 후보가 된 인권변호사 정민(황정민 분)과 왕년 가수 지망생 정화(엄정화)가 가수에 도전하는 이야기의 ‘댄싱 퀸’은 코미디와 드라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연기본좌’ 김명민은 ‘페이스메이커’에서 신체적 결함이 있는 마라토너로 등장해,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 분석력을 선보인다. 김명민의 연기는 여느 때처럼 훌륭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다소 도식적이며 다른 캐릭터들의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페이스메이커’의 약점이다. 신세대 스타 엄태웅, 정려원 주연의 ‘네버엔딩 스토리’는 젊은 세대들을 겨냥한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남녀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싹트는 사랑을 그렸다. 세 편 중에서 영화적인 완성도는 가장 떨어진다. Theatre & Musical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4월 29일까지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02-762-0010) | 출연_이석준, 이창용 외
스타 하나 없지만 꾸준히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웰 메이드’ 소품 뮤지컬.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가 그의 30년 지기인 앨빈을 추억하며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오가는 액자 형식의 2인극이다. 7살 초등학생 시절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던 앨빈과 토마스는 나중에 둘 중 누군가가 먼저 하늘나라로 간다면 남아있는 한 명이 송덕문(頌德文, 공덕을 기리어 지은 글)을 써주기로 약속한다. 어른이 되어 작가로 성공한 토마스는 점점 세상에 찌들어 가지만,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힌 앨빈은 여전히 여섯 살 어린 아이 그대로다. 영화 ‘멋진 인생’의 주인공처럼 다리 위에서 몸을 던진 앨빈을 위해 토마스는 과거 30년을 되새긴다.엄청난 제작비가 든 화려한 무대와 의상, 화려한 배우들이 나오는 뮤지컬을 원한다면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를 선택하지 않는 편이 좋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최대 장점은 살아 숨쉬는 내러티브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며, 관객으로 하여금 각자의 돌아온 과거를 절로 돌아보게 한다.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두 배우의 안정적인 연기 호흡과 감상적인 음악, 동화 속 서재를 빼닮은 무대 등 기본 이상의 완성도로 가장 성공적인 라이선스 한국 뮤지컬 중 한 편으로 평가 받는다. 뮤지컬 블루칩인 고영빈과 조강현과 팝페라 가수 카이가 ‘토마스’ 역으로 등장하며, 앨빈 역은 이석준, 이창용, 정동화가 맡았다. 뮤지컬 가격도 아주 ‘착하다’. 그밖에는……명절에는 역시 ‘빵빵’ 터지는 ‘큰 웃음’ 코미디가 제격이라고 여긴다면 영화, 연극, 방송 등 여러 매체를 오가며 다재 다능함을 뽐내는 장진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연극 '리턴 투 햄릿’(동숭아트센터 동숭홀_02-766-3390)을 권한다. 1998년작 '매직 타임'을 새로이 각색한 ‘리턴 투 햄릿’은 연극 '햄릿'의 마지막 공연을 앞둔 여덟 명 배우들의 무대 뒤 이야기를 통해 꿈과 열정, 갈등을 이야기한다. '택시드리벌' '서툰 사람들' 등 장진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블랙 코미디 장르에 가까우며, 재기 발랄한 대사와 코믹한 설정, 익살스러운 캐릭터들은 여전하다. 깊이보다는 재미에 방점을 찍은 전형적인 장진 스타일의 연극. 손호영을 비롯해 은혁('슈퍼주니어'), 티파니('소녀시대'), 정모('트랙스') 등 신구 아이돌 스타들이 대거 캐스팅된 ‘페임 Fame’(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_02-410-1534)은 전 연령 관객들에 적합한 가족 뮤지컬이다. 앨런 파커 감독이 연출한 동명 영화의 성공적인 크로스오버로, 1995년 런던 웨스트엔드 초연을 시작으로 16개국 300개 프러덕션에서 제작되었으며 현재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뉴욕 46번가에 위치한 PA 공연예술학교를 무대로 노래, 춤, 연기, 연출 등 각기 예술 분야에서 1등을 꿈꾸는 젊음의 끼와 열정을 그린다. TV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1월 21일 23:20 KBS1 | 감독_샘 우드 | 출연_게리 쿠퍼, 잉그리드 버그만 외
돈도 없고 연휴를 함께 할 친구도 없다면 ‘바보상자’ TV로 눈을 돌려보자. 이번 연휴에도 계속되는 국내 아이돌 스타들의 재롱 잔치들과 재방, 삼방이 기본인 기존 프로그램들 대신 할리우드 클래식의 매력을 눈으로 확인할 것을 권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는 할리우드 최고의 황금기로 꼽히던 1940년대에 제작된 불멸의 클래식으로,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파시스트와 공화 정부파로 갈라진 1937년 스페인 내전, 정의와 자유를 꿈꾸던 이상주의자 미국인 청년 로버트 조단(게리 쿠퍼 분)은 공화정부파의 의용군 게릴라로 활동한다. 로버트는 적군의 진격로인 철교를 폭파시키기 위해 두메산골에 잠입하지만, 그곳에서 스페인 게릴라 소녀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 분)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대 배우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매력이 한껏 빛난 작품으로, 원작에서 헤밍웨이가 역설했던 정치성 대신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싹튼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푸른 달빛이 내려다 보는 바위 틈에서 마리아가 로버트와 첫 키스를 나누기 전 “코의 위치를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말하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사의 명 키스 장면으로 꼽힌다. 미국아카데미시상식 작품상, 남녀 주연상 등 9개 후문 후보작. 가장 아름다웠을 때의 잉글리드 버그만을 목격할 수 있다. 그밖에는……휘파람 소리가 멋지게 울려 퍼지는 스코어로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23일 00:50 KBS1)는 전쟁 영화의 명불허전에 해당된다. 이전까지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 등 소규모 드라마 장르의 영화에서 장기를 보인 데이빗 린 감독이 피에르 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미얀마 국경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이듬해 미국아카데미시상식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했다. 윌리암 홀덴, 알렉 귀네스, 잭 호킨스 등 ‘짱짱’한 대배우들의 호연은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눈부시다. 전라도 청년 송새벽과 경상도 처녀 이시영의 좌충우돌 로맨스 ‘위험한 상견례’(21일 23:00 SBS)와 류승완 감독의 액션 스릴러 ‘부당거래’(21일 22:05 KBS2)도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두 영화들은 공히 배우들의 호연으로 기대 이상의 흥행 성적을 이끌었던 ‘슬리퍼 히트’작들이다. 태상준 기자 birdca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문화부 태상준 기자 birdcage@ⓒ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