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Talks - 짐 로저스의 투자법, 버냉키의 미신, 그리고 음향과 분노

[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자본주의는 ‘자본’의 체제다. 사람의 체제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돈이 입을 열면, 인간은 지시받은대로 행동한다. 돈이 입을 열면, 세상은 침묵한다. 돈은 체제의 logos(이성)이다. 1. 약간은 리버럴하고 조금은 시니컬한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지난 21일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공개시장위원회(FOMC) 직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의 투자원칙을 공개했다. "short equities, long commodities". 주식은 (공)매도하고 원자재는 매수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주식시장은 아직 폭락 전이었고 연준이 경기부양책을 쓸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포트폴리오의 원칙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했다. “경기가 좋으면 주가는 오를 것이고, 그러면 원자재 가격도 수요가 늘어나 상승한다”. 따라서 포트폴리오의 헤지(위험 분산)도 되고 수익도 발생한다. 경기가 나빠지면? “주가는 하락할 것이고 그러면 (공)매도는 수익을 낳는다”. 원자재 가격 하락은? “경기가 하락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Fed는 돈을 찍어낼 것이다. 그러면 유동성 증대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원자재 가격은 상승한다”. 어느 쪽으로 가던 수익이 난다는 것이다. 세상의 경제는 복잡하지만 그의 원칙은 너무나도 단순하다. 어찌됐든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낼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경기의 순환이나, 복잡한 지표들, 경제 전망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그는 중앙은행의 본성에 배팅한 것이다. 지난 30년간의 역사를 보면 짐 로저스의 말에 반박하기 힘들다. 인류는 일찍이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돈의 홍수에 쓸려가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짐 로저스는 “그들(연준)은 세상의 나무가 다 없어질 때까지 돈을 찍어낼 것”이라고 다소간 경멸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 다행히 지금의 전자화폐 시스템하에서는 종이로 돈을 찍어내지는 않는다. 자판 몇 번 두드리면 끝난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미국은 10달러짜리 지폐를 단 한 장도 찍어내지 않았다. 돈은 늘어가고 있지만, 소모되는 종이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환경주의자들은 마땅히 연준에 감사해야할 지도 모른다. 2. 지난 2006년 미국 연방은행 총재가 알란 그린스펀에서 벤 버냉키 현 의장으로 교체되었을 때 전문가들은 우려와 기대로 바라보았다. 그린스펀은 카리스마를 가진 주술사였다. 그는 경제를 언어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렸고, 월스트리트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노련한 주재자이기도 했다. 그린스펀의 ‘언어’는 시장의 분위기를 정확히 조절해내고 유도해 낼 수 있는 훌륭한 정책적 수단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투자은행들은 그린스펀 전담 분석가 (Fed Watcher라고 불렸다)를 두고, 그린스펀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머리를 싸맸다. 버냉키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소박한 촌동네 출신이다. 학자로서의 성실성과 확고함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고,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이긴 했지만, 정치적 색채라던가 정책 관료로서의 이미지보다는 골방의 지식인 느낌이 더 강했다. 왜 이 순박해보이는 학자풍의 지식인을 세계 경제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연준의 의장으로 선택했을까? 아마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당시에 깨달았을 것이다. 버냉키의 전공은 경제사이며, 무엇보다도 지난 1930년대의 대공황 연구가이다. 대공황 전문가가 연준 의장으로 올라서면 의당 다음에 무엇이 다가올런지 예측해야 한다. 소방관이 나타나면, 마땅히 불이 난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학자로서의 버냉키의 논리는 짐 로저스만큼 단순하다. 신용 축소로 인한 디프레션(depression; 공황)에는 대담한(bold) 유동성 공급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어렵게 얘기하면 disinflation, 쉽게 말해서, 돈을 찍어내면 해결된다는 것이 그의 학문적 신념이다. 말이 좋아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지, 그냥 돈을 찍어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지난 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양적완화라는 말 자체가, 발권이라고 부르기 민망해서 붙인 일본식 왜곡법이다. 버냉키의 학자로서의 이성의 핵심은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비판적 해석(일본은 돈을 덜 찍어내서 실패했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신체적으로 대담(bold; 대머리)할 뿐만이 아니라, 그 이론적으로도 대담한 것이다.여기에 부가설명이 하나 더 있다. 그는 2003년의 논문에서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통로를 제시한다. 돈을 찍어내는 것은 금융기관의 구제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실물경제에 대해서는 별개의 해답을 준비한 것이다. “주식시장 부양을 통해서 소득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견해는 2007년과 2010년의 뉴욕 연준의 조사연구서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버냉키에게는 주식시장이 하위 60%의 대중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별 문제가 안된다.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30% 이상을 갖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중앙은행이 소득불균형을 해결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시장은 자유로운 참여자들 사이의 수요 공급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고, 경기는 침체와 호황이라는 싸이클을 반복한다고 믿는 순진한 자유주의 경제학 신봉자들을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이들에게는 돈을 찍어내서 경제와 금융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시장왜곡이며, 불가피한 결과를 뒤로 미뤄서 더 크게 만드는 것뿐이다. 이 설명불가능한 논리적 왜곡을 두고, 최근의 한 펀드의 보고서는 양적완화에 대한 버냉키의 신념을 ‘미신’이라고 표현했다. 화폐는 단순한 교환수단일 뿐이지, 경제의 통제 수단이 아니다. 이른바 ‘부채를 부채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절규이다. 이들의 주장은 제법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버냉키의 ‘대담한’ 정책이 그다지 효과를 못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비난은 물론, 연준 내에서도 인플레이션만 유발하고 잠재 성장력을 갉아먹으며 달러화 가치만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도 대공황 앞에서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적 원천인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1980년대 초반 죽기 직전의 논문에서 초기의 견해를 수정, 대공황이 발생하면 무한정 유동성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할 뿐만이 아니라 적절하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돈이 먼저 살아야 하는 것이다.3. 지금처럼 달러화 강세로 주식가격과 원자재 가격이 동시에 떨어지면, 로저스는 손실을 보지 않을까? 아마도 로저스는 “이제 돈을 찍어내기 위한 조건이 다 갖춰졌다”고 말할 것이다. 공포가 클수록, 신용이 축소될수록, 호로병 속에서 튀어나올 지니의 몸집은 커질 것이다. 더구나 유럽의 부채 위기가 결국 돈을 찍어내서 해결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면서, 이를 빌미로 한 국제공조(다함께 돈 찍기)는 시기상의 문제가 되고 있다. 굳이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알고 있는 게임의 법칙인 것이다. 이미 브라질 재무장관은 유럽의 위기가 진정되면 또 다시 달러화의 과잉유동성과 이로 인한 세계 각국의 통화 전쟁을 경고했다. 중국은 다소 점잖게, 국제 통화체제가 무분별하게 발행되는 화폐(달러)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도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지 탐험가들은 사막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소금이고, 홍수가 났을 때 가장 귀중한 것은 (마실) 물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트위스트와 유럽의 부채 위기로 인한 신용경색과 달러화 강세로 자본의 이동이 극심해진 것이다. 게다가 대형 펀드들의 환매 요구가 증가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엄청난 돈 가뭄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신흥시장에서의 자본 유출이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로 인한 신흥국가에서의 시스템 이벤트(국가 부도나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 사태)도 경고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항상 핫머니들은 이같은 불안 상태를 악용하기 때문에 공포는 늘 실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희생자들을 만들어낸다. 금융자본으로서는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조용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자면, 결론이 뻔하다는 점에서는 이 모든 아우성들은 결국 돈을 찍어내기 위한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헛소동은 온갖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차 있는 것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는 재치있게도, 그것은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썼다.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이공순 기자 cpe101@<ⓒ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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