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지지하는 팀이 해당 대륙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무대에서 타 리그 최고의 클럽들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면 그보다 더 짜릿하고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수도 있는데, 특히 '외나무다리 승부'인 토너먼트 단계에 돌입했을 때의 긴장감이야말로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인 까닭이다. 어쩌면 지금 전북, 서울, 수원의 팬들이 느끼는 심경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각각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AFC(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에서 받아든 세 팀의 성적표가 일단 만족스럽지 않다.결과의 만족 여부를 떠나 이번 주 펼쳐진 아시아 대륙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들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했던 한 판은 역시 전북의 세레소 오사카 원정 경기였다. 양 팀 통틀어 무려 일곱 골이 터져 나온 이 경기에 관한 몇 가지 단상들을 적어본다.세레소의 에이스약간의 과장을 섞어 전북은 김보경의 활약에 패했다. 김보경은 세레소의 플레이메이커였고 그 역할을 120% 수행해냈다. 중원에서의 키핑과 적절한 볼 배급에 더하여 위험 지역으로 날카로운 침투까지 곁들였던 김보경은 경기를 중계한 외국 중계진으로부터 내내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세레소는 독일 2부리그로 떠난 이누이 다카시의 공백이 아쉽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세레소가 김보경을 계속 필요로 했던 이유다. 물론 김보경은 우리나라 선수이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클럽 축구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포르투갈 클럽들을 향해 창끝을 겨누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과 마찬가지다.서정진 대 김보경서정진과 김보경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안게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다. 그러나 이 날의 둘의 관계는 첨예한 드라마였다. 경기 초반 김보경은 서정진의 태클로 인해 그라운드에 쓰러져야 했다. 하지만 후반전 김보경의 프리킥이 서정진의 팔에 맞아 페널티킥이 되면서 결국 통한의 결과를 받아든 쪽은 서정진이 됐다. 과연 전주성 2차전에서는 누가 웃을까?전북의 이동국전북은 틀림없이 이동국이 마음 편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팀이고, 이동국 자신도 지금껏 전북의 팀 전술에 열성적으로 부응해왔다. 어시스트가 많아진 올 시즌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 어시스트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시절에도 이동국은 전북의 득점 기회 창출에 적잖이 연관되곤 했다(직접 어시스트만이 다는 아니다). 루이스와의 원투 패스를 통한 절묘한 침투 골은 이동국과 전북의 궁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임에 분명하다. 쉽지 않은 자세에서의 발리? 그것에는 옛날부터 '달인'이었다.코너킥엔 조성환전북의 경기들을 관찰해보면, 수비수가 공격에 가담하는 세트플레이 장면에서 적어도 7,80%의 볼이 조성환을 목표로 날아간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정성훈이 투입되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100%에 가깝다 해도 무방할 정도다. K리그 클럽들은 알고도 막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세레소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헐리우드 반도설마 황보원이 입으로 불어서 넘어뜨렸을까? 반도 류지의 황당한 연기력은 한 마디로 해외토픽 감이었다. 주심은 그에게 카드를 꺼냈어야 했다.파비오 로페스지난 시즌 후반 K리그 대전에서 잠시나마 희망봉 역할을 했던 파비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는 경기였다. 이러한 측면 또한 챔피언스리그의 매력이라면 매력. 경기 내내 꾸준히 잘했던 것은 아니지만 순간순간의 센스는 살아 있었다. 2차전에서도 다소간 경계할 필요가 있을 듯.통계가 말을 했다J리그에서 지금껏 성적이 좋지 않은 세레소이지만 사실 득점력이 부족한 팀은 결코 아니다. 상위권 팀 다수를 능가하는 득점을 하고 있으나 실점이 많고 기복이 심해 고생하고 있는 팀이 세레소다. 최근 경기들에서 득점이 특히 많았다. 리그 순위 상으로는 차이가 크지만 전북에게도 유사한 부류의 불안감이 있다. 물론 전북은 전체적으로 보면 실점도 매우 적게 기록되어 있는 팀이다. 그러나 올 시즌 두 골 이상 실점한 경기가 리그에서만 9경기이고 특히 최근 경기들에서 실점이 많은 편이었다. 이 경기의 내용과 스코어는 두 팀의 통계적 모습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할 만하다.전북의 수비전북의 수비 불안은 여러 부문에서 야기됐다. 우선 전북은 아군의 위험지역에서 수비가 다소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고 이 경우 다른 쪽 공간이 제대로 커버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또한 양 측면 수비가 효율적인 위치 선정에 실패함으로써 위기를 맞게 되는 경우들이 적잖이 나타나는데, 특히 세레소가 간결한 플레이가 돋보이는 키요다케 히로시, 저돌적 스타일인 사케모토 노리유키의 측면 공격을 보유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위험천만이다. 또한 첫머리에 이야기했던 바대로 전북은 미드필드에서부터 김보경의 플레이를 좀 더 제어했어야만 했다.선제골과 밸런스세 골이나 되는 '원정골'을 터뜨리고 돌아왔다는 사실은 전북에겐 작지 않은 위안. 그러나 1패를 안고 있는 이상, 전주성에서 먼저 골을 넣어야만 하는 쪽이 전북이라는 사실 또한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전북이 골을 터뜨리기만 하면 바로 그 순간부터 골이 필요한 쪽은 세레소로 변한다. 한 골 한 골이 터질 때마다 두 팀의 상황은 계속 급변할 것이다. 결국 이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골을 터뜨리느냐와 더불어, 누가 더 침착성과 인내력, 집중력을 지닐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다 해서 밸런스를 마구 무너뜨려서는 곤란하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대중문화부 조범자 기자 anju1015@ⓒ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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