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야구에는 9개의 포지션이 있다. 이는 크게 분류해 투수와 포수 그리고 내외야로 나뉜다. 이 가운데 한 선수가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은 대략 2~3개 남짓. 만약 왼손잡이가 아니라면 내야 및 외야 7개 포지션까지도 가능하며 투수와 포수까지 더해 전 포지션 소화도 넘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각 포지션마다의 다른 특성으로 2~3개를 맡기도 벅차다. 더구나 할 수 있다 해도 맡을 수 없는 정치적인 문제가 존재한다.지난 7월 3일 메이저리그에서는 9개 포지션을 맡아 본 주인공이 나와 화제를 모았다.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에서 추신수의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선두 경쟁 중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3루수 돈 켈리다. 현역 선수로는 유일하게 투수, 포수 포함 9개 전 포지션에서 뛰는 진기록을 세웠다. 홈런 선두인 호세 바티스타(토론토 블루제이스)나 탈삼진 선두에다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팀 동료 저스틴 벌렌더 만큼 인지도나 높은 기록적인 가치를 보인 건 아니지만 흔치 않은 기록을 세운 만큼 뉴욕 타임즈 등 유력 언론 매체에 이름을 올렸다.올해 31세이며 우투좌타인 켈리가 9개 포지션을 섭렵한 여정에는 4년이 소요됐다. 메이저리그 4년 차로 2007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데뷔한 그는 그해 2루수, 유격수, 좌익수, 우익수에서 뛰었고 자신을 드래프트한 디트로이트로 컴백한 2009년, 1루와 3루수로 활동했다.지난해 중견수로 등장해 투수, 포수를 제외한 7개 수비 위치를 모두 소화한 켈리가 경험하지 못한 포지션은 투수와 포수. 고교시절 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모두 맡아봤던 켈리지만 프로 무대에서 투수와 포수를 맡을 수 있는 기회는 희박해 보였다. 전문적인 위치인데다 다른 위치에 비해 임시직을 차지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진기록 달성에는 늘 운이 따라야 하는 법. 켈리는 6월 30일 뉴욕 메츠와의 인터리그에서 팀이 9-16로 크게 뒤지는 바람에 마지막 수비이던 9회초 마운드에 올라 메이저리그 입문 이후 처음으로 타자에게 공을 던졌다. 당시 투수 소진을 막기 위해 투수로 나선 켈리는 한 타자를 잡는데 그쳤지만 시속 137㎞의 직구와 커브를 섞어가며 기대 이상의 투수 데뷔전을 치렀다.마스크를 쓰게 된 것도 운이 따랐다. 7월 3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주전 포수인 빅터 마르티네스는 첫 공격 뒤 부상으로 더 이상 뛸 수 없게 됐다. 다음날 경기는 낮 경기로 진행됐다. 백업포수마저 쉽게 내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켈리는 안방마님으로 나서게 됐다. 비록 포수로 처음 나선 경기가 투수로 뛴 경기와 같이 홈에서 3-15로 대패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팬들은 개인 진기록 달성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미국 속담에 ‘Jack of all trades, and master of none’이라는 것이 있다. ‘재주가 많다고 월등한 것은 아니다’는 뜻인데 켈리 역시 속담처럼 장기가 두드러지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무엇보다 공격에서 보여줄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는데 지금까지 한 시즌 100경기 이상 뛴 것은 지난해 한 번 뿐이었다. 통산 평균 타율도 2할3푼7리에 그친다. 진기록을 세운 주인공 켈리는 그저 팀 내 전천후 백업요원에 불과한 셈이다.하지만 팀에서 체감하는 켈리의 가치는 스타 이상이다. 홈, 원정의 구장을 찾는 팬들이 보여주는 켈리에 대한 사랑 역시 스타급 못지않다. 화끈한 플레이를 보여준 적은 없으나 팀이 필요로 할 때 딱 떠오르는 선수가 켈리이고, 가장 먼저 손을 드는 선수도 켈리라서 그 인기는 무척 뜨겁다. 비록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아 올해 연봉 42만 달러에 그쳐있으나 그 값어치는 그보다 50배나 많은 20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는 미겔 카브레라 못지않다. 켈리 같은 선수가 있기에 디트로이트가 시즌 중반 뒤로 더 힘을 내 지구 선두로 오른 것이 아닌가 싶다.사족 하나. 켈리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2루수인 닐 워커의 여동생과 결혼했다. 팀은 물론 타 팀 동료들과 친할 정도로 붙임성에서도 재주가 능하다.이종률 전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대중문화부 이종길 기자 leemea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