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선생의 '대한애국가' 자필악보. 이 자필악보가 근대음악유물 가운데 처음으로 '등록문화재'가 된다.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영국 스코틀랜드의 가곡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의 한국 노랫말이다. 1788년 작곡된 이 곡은 한국에 '석별'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는데, 누군가는 이를 애국가로 기억하기도 한다. 1900년을 전후해 사람들이 올드 랭 사인 곡조에 애국가 노랫말을 붙여 불렀던 탓이다. 고(故) 안익태(1906~1965) 선생의 애국가 작곡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람들이 남의 나라 노래에 애국가 노랫말을 넣어 부르는 걸 보고선 마음이 아파 작곡을 결심했다는 애국가. 이 애국가 자필악보가 안 선생 탄생 105주년인 올해 등록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청장 최광식)은 안 선생의 '대한국애국가(1949.4.18)' 자필악보와 한유한의 '광복군가집 제1집(1943)', '애국창가 악보집(1916)' 등에 대해 등록문화재 등록 예고를 한다고 28일 밝혔다. 근대음악유물이 등록문화재가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29일 애국가 자필악보 등에 대해 등록문화재 예고를 하고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2개월여 뒤 최종 등록 고시를 할 예정이다. 1919년 3.1운동 수감자 구출운동에 가담했다가 평양 숭실중학교에서 제적을 당한 안 선생은 일본 도쿄국립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3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석한 그는 사람들이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맞춰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선 대한민국 국가 작곡을 결심했다. 1935년 11월에 완성된 애국가는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 국가로 제정됐으며, 이후 교과서 등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안 선생이 독일에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하던 때 일본 축전곡을 지휘한 일 등을 두고 한 때 친일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2005년 3월 안 선생의 유족이 애국가 저작권을 한국에 기증하면서 애국가는 우리 곁에 영원히 남게 됐다. 성정은 기자 je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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