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지난해 4월의 일이었다. 모 구장에서 K리그 경기가 있던 날. 모처럼의 휴일을 맞아 기자석이 아닌 북측 응원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서포터즈가 모여있는 중앙 쪽이 아닌 대각선 방향이었다. 티켓 값이 가장 싸면서도 편하게 경기를 보기에 가장 무난한 자리였다. 20대로 보이는 청년이 바로 옆좌석에 이어폰을 낀 채 앉아 있었다. 축구장에 웬 이어폰이란 생각도 잠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경기가 시작하자 그게 핸즈프리란 사실을 알아챘다. 청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통화 상대방에게 전하고 있었다. 어느새 모든 청신경을 집중해 그 소리를 엿들었다. '에이 팀 어택, 비 팀 디펜스(A team attack, B team defense)…비 팀 코너킥, 에이 팀 클리어(A team corner kick, B team clear)…'그는 경기 내내 그라운드 상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주로 영어로 얘기했지만 중간 중간 중국어로 무언가를 전달하기도 했다. 수상쩍은 마음에 전반 휘슬이 울릴 무렵 말을 걸었다. "저기요". 그는 힐끔 눈길을 주더니 이내 벌떡 일어나 관중석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해외 도박 세력이 K리그를 대상으로 불법 베팅을 한다는 소문과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몇달 뒤 실제 프로축구계에는 불법도박과 승부조작에 대한 풍문이 떠돌기 시작했다.한 에이전트는 이에 대해 "실제로 불법 도박에는 중국 세력이 가장 거대하게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사례 역시 해외 도박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불법 스포츠 베팅의 온상지다. 큰 돈이 오가는 불법 베팅은 곧 승부조작과 이어진다. 중국 수퍼리그 팀을 맡고 있는 모 감독은 한 때 경기 직전까지 선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경기 결과가 이어지자 승부조작을 의심한 것. 이에 브로커들이 애초에 누가 출전할지 모르도록 만들어 '사전 접촉'을 차단하려 했던 의도였다. 그만큼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 이 에이전트는 "중국은 구단조차도 승부조작에 참여한다더라"고 덧붙였다. 심각한 상황에 중국 내에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다. 결국 시장이 위축되자 거대 불법 도박 세력이 눈을 돌려 한국 스포츠 전반에 뛰어들고 있다. 2008년 한국 스포츠 최초로 승부조작으로 팀이 해체됐던 3부리그 서울 파발FC도 당시 중국 도박업체 브로커와 연관이 있었다. 축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야구의 경우는 투수의 초구 스트라이크를 놓고도 배팅을 하고 있다는 풍문까지 들려온다.국내 유일의 합법 스포츠 베팅인 스포츠토토의 연간 시장 규모는 2조 원대지만 불법 스포츠 베팅은 이를 넘어선 3조 원대로 추정된다. 한 프로축구 관계자는 "알려진 게 그 정도지, 더 어마어마할 수도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더불어 "워낙 천문학적인 액수가 걸리다 보니 '검은 세력'이 개입됐을 것이다. 특히 중국과 한국 조폭 간의 연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실제로 승부조작을 적발한 창원지검은 이번 사건과 조폭과의 연관성에 무게 중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구속된 경남 지역 출신 브로커가 마산 지역 조폭을 등에 업고 있다는 것. 김동현의 경우도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조폭의 협박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여기에 지난달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자살한 故 윤기원 인천 골키퍼의 죽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당초 자살 동기로 추정됐던 전 애인과의 결별이 조사 결과 설득력을 잃었고, 뚜렷한 이유없이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자살했던 점도 미심쩍다. 결국 승부조작에 연루돼 인천 내 조폭의 협박과 회유를 받았다는 추측이다. 조폭이 연계됐다면 그만큼 한 번 발을 들인 선수는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거래 방식도 워낙 음성적이어서 알아채기 어렵다. 또 다른 에이전트에 따르면 모든 브로커는 개별적인 점조직으로 움직인다. 당연히 조직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각 브로커는 선수와 접촉시 통화 목록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명 '대포폰'(명의 도용 휴대전화)을 사용한다. 사례금도 통장을 거치지 않고 현금으로만 전달한다. 액수도 어마어마하다. 보통 007 가방에 가득 담겨 전달된다. 故 윤기원 사망 당시 조수석에 있던 100만 원이 승부조작 증거라 지적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 정도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에 관계자들의 예측대로 한-중 조폭 간 연계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승부조작 세력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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