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준 기자의 CINEMASCOPE - '레드라인'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21세기 애니메이션의 주류 트렌드는 컴퓨터 그래픽(Computer Graphic)과 3D 디지털이다. 애니메이션의 ‘명가’인 월트 디즈니를 비롯하여 ‘토이 스토리 3’의 픽사, ‘쿵푸 팬더 2’의 드림웍스, ‘아이스 에이지’를 내놓은 폭스 계열의 블루 스카이, ‘랭고’의 루카스필름 등 매년 할리우드의 메인 스튜디오들은 수많은 CG 애니메이션을 쏟아낸다. ‘라푼젤’ 공주와 개구리’ 등 아주 가끔 월트 디즈니 정도가 전통적인 방식의 셀 애니메이션을 내놓긴 하지만, 이미 CG로 넘어간 전세를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당연히 그 이유는 돈이다. 수많은 애니메이터의 손으로 그려진 작화와 원화를 통해 제작되는 셀 애니메이션에 비해 대부분의 작업이 컴퓨터를 통해 이뤄지는 CG 애니메이션은 인력과 비용 절감 효과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러나 일본의 사정은 할리우드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웃집 토토로’의 스튜디오 지브리를 비롯하여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가이낙스와 카라 등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은 여전히 셀 애니메이션을 고집한다. 이번 주 개봉된 매드하우스 제작의 ‘레드라인 Redline’도 마찬가지다. 무려 7년의 시간 동안 10만 장이 넘는 작화 매수가 이 영화에 사용됐다. 그 흔한 CG의 사용도 최소화했으며, 3D 입체도 아닌 2D 평면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레드라인’은 웬만한 3D 애니메이션보다 더 생생하고 다이너믹한 입체 효과를 낸다. 철저히 편집과 작화의 힘이다.‘레드라인’은 자동차와 비행기의 경계가 사라진 근 미래를 배경으로, 5년마다 열리는 우주 최고의 레이싱 대회 ‘레드라인’에 목숨을 거는 세 주인공의 이야기다. 극한의 스피드를 추구하는 순정남 레이서 JP(기무라 타쿠야 분)와 그의 친구인 천재정비사로 마피아와 결탁해 승부 조작을 주도하는 프리스비(아사노 타다노부 분) 그리고 JP의 첫사랑으로 레이싱만을 꿈꾼 여자 소노시(아오이 유우 분)까지, ‘레드라인’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우정, 사랑, 성공 같은 ‘예측 가능’한 이야기를 ‘예측 가능’하게 펼친다. 하지만 SF적인 설정과 도발적으로 흐르는 내러티브, 공들여 창조된 매력적인 캐릭터들 덕분에 전혀 진부하고 따분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다.다시 셀 애니메이션 이야기로 돌아오자. ‘레드라인’은 여전히 셀 애니메이션의 약효가 끝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수작 애니메이션이다. 그들은 “기존 방식으로도 최고의 것을 잘 구현할 수 있는데, 왜 더 빠르고 새롭다는 이유로 다른 매체로 옮겨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에 유일하게 맞서 그들과 동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저력의 근원이다. 할리우드의 하청 업체 수준에 멈춰있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상황을 돌아보면 그들이 부럽기만 하다.태상준 기자 birdca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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