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감' 상처입은 정준양·이석채 회장

곽승준 위원장 '오너십 부족' 발언에 충격정부 입김 막아가며 혁신 올인 포스코·KT 재도약 기반 마련 불구 정부 눈엔 여전히 '공기업'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27일 오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서관 아트센터에서 열린 '포스코 동반성장 협약식'에 참석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얼굴엔 무거운 미소만 엿보였다. 그는 행사와 관련된 언급 이외에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이에 앞서 26일 제주특별자치도와 업무 협약식 참석을 위해 현장에 내려간 이석채 KT 회장은 "KT만큼 주주가치 제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기업이 어디 있느냐"며 정부에 반발했다.침묵한 CEO와 반발한 CEO. 두 사람은 상반된 방법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정, 이 회장은 지난 2009년 각각 포스코와 KT의 수장이 됐다. 당시 양사는 전임 CEO가 동반 불명예 퇴진한 어수선한 상태였다. 정권 수혜주라는 외부 눈총과 낙하산 인사라는 조직 내에서의 반발 속에 두 사람은 회사를 맡았다. 두 회사는 2000년대 초반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전환됐지만 정부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실세가 누구냐에 따라 회사는 늘 흔들렸고 CEO 선임도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부정적 이미지를 씻기 위해 강도 높은 개혁과 혁신을 단행하는 한편, 정부가 추진하는 온갖 정책을 가장 충실히 이행했다. 협력사 지원, 일자리 창출 등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하지만 두 사람의 노력은 헛수고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26일 곽승준 청와대 직속 미래경영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포스코와 KT를 바라보는 눈은 공기업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곽 위원장은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차 미래와 금융 정책토론회'에서 두 회사를 '오너십이 부족한 대기업'이라고 낙인찍고, "방만한 사업확장으로 주주가치가 침해되고 국민경제에 역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며 두 회사의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소식을 들은 두 CEO도 크게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곽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뤄낸 결과물들을 송두리째 매도당했다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사실상 경영 개입으로, 정부의 간섭이 더욱 심해질 것임을 의미한다. 이를 정부 스스로가 선택한 CEO를 앉힌 두 회사에게도 적용하겠다니, 임직원들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물 빼먹었으니 이제 필요 없다는 것인가. 배신감을 느낀다"는 극단적인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글로벌 기관에서 최고의 지배구조를 갖췄다는 평가와 상을 수 차례 받은 두 기업을 가장 많이 흔든 당사자는 정부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장관 출신인 이 회장조차 "KT CEO에 내정된 순간 온 사방에서 어떤 사람은 이러니 승진시켜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능력 인사보다 유력인사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을 정도다. 말단 사원부터 시작해 정상의 자리에 오른 정 회장에게 쏟아지는 압박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도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임기가 한정된 포스코와 KT CEO들은 자의건 타의건 정권의 입김에 의해 자리에 올랐지만, 그 폐해를 잘 알기 때문에 CEO에 오른 후 "나 이후 더 이상 외부에 의해 조직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회사의 자주적 독립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고착된 현 상황에서는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가, 내년 대선 이후 회사의 상황은 또 어떻게 변할 지 알 수 없다. 두 사람의 거취에도 변화가 있는 게 아니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포스코 출신 한 인사는 "글로벌 기업들도 인정하는 포스코나 KT를 가장 푸대접 하는 게 우리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이다"라며 "정부도 두 회사를 과거의 구태로 되돌리려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채명석 기자 oricm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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