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먼지에 파묻힌 책은 그나마도 일부가 찢겨져 있었다. 1975년 박병선(사진) 박사가 외규장각 도서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냈을 때의 일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 박사는 도서관 별관에 있는 파손 도서 창고에서 우연히 외규장각 도서를 보게 됐다. 그로부터 36년. 그동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온 외규장각 도서 297권 가운데 75권이 14일 오후 한국 땅을 밟았다. 대부분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고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어람용'(御覽用ㆍ왕이 보는 서책) 의궤다. 의궤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거행된 여러가지 의례의 전모를 소상하게 기록한 서책을 말한다. 프랑스가 1886년 병인양요 때 이들 도서를 약탈해간지 145년, 서울대학교가 처음으로 정부에 외규장각 도서 반환 추진을 요청한지 꼬박 20년 만의 일이다.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은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들 도서를 임대 방식으로 반환키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목소리가 나온 건 박 박사가 1979년 이들 도서가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을 국내에 적극적으로 알리면서부터다. 박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목록을 정리해 기자들과 한국 정부에 주고,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꼼짝 않고 외규장각 도서를 조사하는 등 백방으로 뛰었다. 외규장각 도서를 알리는 일에 앞장서면서 프랑스 국립도서관 내의 사람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박 박사는 결국 사서 일을 그만두기에 이른다. 사표를 내라는 도서관장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 박사의 노력으로 학계와 정부, 시민단체 등 많은 사람들이 외규장각 도서 반환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92년엔 한국 정부가 직접 프랑스에 도서 반환 요청을 하고 나섰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은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의궤 1권을 반환하면서 결실을 맺는 듯 했으나 반환 방식 등을 두고 양국 사이의 마찰은 계속됐다. 2001년엔 외규장각 도서와 한국 고문서의 맞교환 합의가 이뤄졌으나 국내에서 반발 여론이 거세 무산됐다. 정부가 프랑스에 반환을 요청한지 19년 만인 2010년 우여곡절 끝에 도서 반환 합의가 이뤄졌다. 5년 단위로 갱신하는 임대 방식의 반환이었다. 어렵게 다시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는 이날 인천공항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잠시 그 모습을 보인 뒤 박물관 수장고로 들어갔다. 외규장각 도서를 다시 보려면 지금부터 세 달을 기다려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나머지 외규장각 도서 220여권이 5월 말까지 4번에 걸쳐 국내로 모두 들어오고 나면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7월19일부터 두 달 동안 열리는 특별전에선 외규장각 도서 297권이 전부 공개된다. 박물관 측은 특별전이 끝나면 도서 가운데 일부를 전시하는 상설전을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과 관련해 "이번에 반환되는 외규장각 도서는 모두 왕실의 주요 행사 등을 담은 의궤라는 데 첫 번째 의의가 있다"며 "의궤는 국가 기록 문화로서 높은 가치를 가지며, 당시에 사용한 종이나 그 안에 담긴 회화를 통해 전통 서화 문화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자료로서도 높은 가치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우리나라는 근현대 역사를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를 강대국에 약탈당했는데, 이번 외규장각 도서 반환은 정부 차원에서 노력해 돌려받게 된 최초의 대규모 반환이라는 점에 두 번째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정은 기자 jeun@<ⓒ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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