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윤영미는 20여년간 SBS 간판 아나운서로 활약한 베테랑이다. 40대를 맞은 뒤에도 여자 아나운서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1985년 춘천MBC 공채로 방송계에 입문한 그는 1991년 SBS 입사 뒤 안주하지 않았다. 세계 최초 여성 야구 캐스터로 활약했고, 40대에는 연예오락 프로그램까지 진출했다. 지금이야 여성 아나운서의 스포츠·예능 프로그램 진출이 자연스럽지만 당시로선 파격 그 자체였다. 특히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야구 캐스터로서의 활약은 방송계에 윤영미 이름 석 자를 알린 결정적 계기가 됐다.“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30대 초반까지 저는 아나운서로서 대중에 각인된 이미지가 없었죠.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당시만 해도 아나운서가 할 수 있는 분야는 뉴스와 스포츠중계가 전부였습니다. 그 중 야구는 일주일에 세 번씩 중계를 했고, 특히 남자 아나운서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도전할만하다고 생각했죠”사실 야구에 대해 그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스포츠신문의 야구 기사를 읽어도 하나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안타는커녕 투수, 포수가 누군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윤영미는 1년간 야구에 미치기로 했다. 전국 모든 구장을 누볐다. 일과 병행하다 보니 10kg이 빠졌지만 6개월이 지나자 눈이 트이기 시작했다. 경기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고, 더그아웃에서 나오는 선수 뒷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금새 알아챘다.
노력은 결과를 배신하지 않았다. 당시 이계진 아나운서 국장이 오디션을 제의했고, 당당히 합격해 세계 최초 여성 야구중계 캐스터로 나서게 됐다. 주변에서는 ‘정말 독하다’는 감탄 섞인 칭찬이 터져나왔다.2000년 야구중계를 마친 뒤 그는 새 영역에 도전했다. 마침 골프중계 여성 캐스터가 모집 중이었다. 노력 끝에 오디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결국 고배를 마셨다. 이해하기 힘든 결과에 이내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젊은 후배들과의 대결에서 외모적인 부분이 핸디캡으로 작용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거기서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연예오락 프로그램으로의 진출을 선택했죠. 모험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실패를 성공의 기회로 반전시켰던 계기가 됐어요”그런 그의 행보에 주변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10년 전 분위기상 더더욱 그랬다. ‘용기있는 결정이었다’, ‘신선하다’, ‘프로답다’는 호평이 주를 이뤘지만 아나운서 내부에서는 ‘치신머리없다’,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부정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패러다임을 바꿔야 했어요. 아나운서가 뉴스만 해서는 할 게 없습니다. 몇몇 유명 여성 아나운서도 지적인 이미지나 미모로 부각됐지만 그게 전부였죠. 원고 없이 방송을 하지 못하는 습관도 문제였어요”결국 그는 연예 오락프로그램에서 리포터로 맹활약했고, 드라마로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아나운서로서 가진 신뢰성 있는 이미지에 친근한 주부로서의 인상을 잘 녹여낸 덕분이었다. 여성 아나운서와 중년이 갖는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도 강점으로 승화시킨 결과였다.팔방미인이자 회사의 간판 아나운서였던 그는 돌연 지난해 말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갑작스런 결정은 바로 논란으로 불거졌다. 인사 이동에 반발해 사퇴한 것 아니냐는 의심 어린 시선도 있었다. “정년까지 8~9년 정도 회사에 더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현장에서 멀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나운서는 보통 40대가 넘으면 관리직으로 빠지니까요. 특히 여성은 더욱 심하죠. 물론 그 역시 가치있는 일이지만 좀 더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사실 고민은 5년 전부터 시작됐다. 이름값이 있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11년은 50살이자 아나운서를 시작한 지 25년 째가 되는 해였다. 개인적으로도 초등학교 방송반에서 마이크를 잡은 지 40년이 됐다. 여러모로 숫자가 잘 맞아떨어졌고, 그만큼 의미도 있었다.결국 지난해 초 프리랜서 선언을 결심했다. 1년간 철저히 준비한 뒤 떠날 생각이었다. 공교롭게도 올해를 앞두고 관리직으로 발령을 받은 게 주변의 오해를 샀던 셈이다.
“퇴물취급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현장을 떠나기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어요. 회사에 속해있다 보니 광고, 강연, 외부행사 사회 등에서 제약도 많았습니다. 더 많은 분야를 하기 위해 프리랜서 선언을 했다는 게 정확하겠죠”그동안 프리랜서를 선언했던 아나운서들 대부분이 고전을 면치 못하거나 방송에서 멀어졌던바 있다. 두렵지는 않았을까.“50대에 프리랜서를 선언한 아나운서는 아마 제가 처음일걸요? 차별화 전략인 셈입니다. 오히려 독보적이라고 볼 수 있죠. 요즘 프리랜서는 대부분 20~30대에요. 그나마도 뉴스 아나운서 이미지에 고착되어 있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저는 스포츠와 연예오락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했어요. 보통의 아나운서는 갖지 못한 아줌마, 주부 같은 친근한 인상도 있죠”그의 말대로였다. 프리랜서 선언과 동시에 CJ홈쇼핑의 주방용품-식품 전문 방송인 'CJ 오키친' MC로 낙점됐다. 특히 전직 아나운서로서 갖고 있는 정확한 스피치 능력과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는 보통의 연예인이나 쇼호스트가 갖추기 힘든 부분이었다. 또 하나의 자신감은 바로 순발력이다. 대본이 없는 홈쇼핑 방송은 전적으로 애드립이 승부를 가른다. 원고에 의존한 방송에 익숙한 아나운서에겐 부족한 능력 중 하나다. 윤영미는 다르다. 20여 년간 야구 캐스터와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를 하며 습득한 애드립 능력이 많은 도움이 됐다.솔직한 매력의 윤영미는 “홈쇼핑을 선택한 이유요? 고수익이잖아요”라며 웃어보였다.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부침 없는 꾸준한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에요. 앞서 밝혔듯이 제가 가진 역량도 가장 잘 발휘될 수 있고요. 열정이 넘치는 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호들갑스럽게 장점만을 부각시키는 방송은 지양합니다. 단점도 정확하게 지적해줄 수 있는, 친근하고 솔직한 홈쇼핑 방송을 꿈꾼 달까요” 진지함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다방면에서의 활약도 예고하고 있다. 전문적인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도 맺었고, 아나운서로서의 경력을 살려 스피치전문 컨설팅회사 설립을 준비 중이다. 스피치에 관한 책도 쓰고 있다. 명지대학교 초빙교수로도 재직 중인 그는 강연 및 교양 프로그램은 물론 예능, 오락, 심지어 드라마까지도 욕심이 있다. 사실 어린 시절 아나운서 이전의 꿈이 영화배우였다. 연기 경험도 있다. 드라마상에서 아나운서로 출현했던 것을 계기로 술집 마담, 옆집 아줌마, 떡장수 등 편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얼굴을 비친 바 있다. “그런 게 더 재밌지 않나요? 제 성격이 더 들어가 편하면서도 리얼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엄마보다는 독특한 개성이 있는 역할로 더욱 많은 시청자와 만나고 싶습니다”
인터뷰 내내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과거 직접 써낸 책의 제목도 ‘열정’이었다. 사실 50대가 되면 도전보다는 안주를 생각하는 경향이 커진다. 그럼에도 식지 않는 열정을 자랑하는 비결은 뭘까.“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잘하고 싶은 욕심 덕분입니다. 특히 승부욕이 강해요. 어린 시절부터 공부는 물론이고 체육대회 달리기에서도 1등을 못하면 잠을 못 잘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항상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하고 성숙해지는 느낌입니다. 날마다 아름다워지는 여자를 꿈꾼 달까요. 호호”20년, 10년 전에도 그랬지만 윤영미는 여자 아나운서로서 당연하다고 생각됐던 한계에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있다. 일종의 선구자인 셈이다.“제가 방송국을 떠난다는 사실에 타방송사 아나운서 후배들까지도 아쉬워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저의 이런 도전에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여자 아나운서는 나이를 먹을수록 활동 영역이 좁아지는 딜레마에 빠지곤 하거든요. 일종의 롤 모델 역할이 돼주길 바라는 거죠”여자 아나운서 스스로 갇혀있는 자세도 지적했다. “여자 아나운서는 일종의 동경과 선망의 대상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 희소가치를 인정하죠. 그런 시선에 맞추기 위해 소위 ‘품위 유지’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후배들이 종종 보여요. 그렇게 자신을 가두다 보면 행복하지가 않아요. 전 생활에는 한없이 자유로운 사람입니다.대신 일에 있어서만큼은 프로페셔널 하게 대하죠. 단 한 번도 방송에서 지각이나 펑크를 낸 적이 없어요. 훌륭한 오디오를 갖추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정은아, 이금희 아나운서만 하더라도 기본에 충실하고 오디오가 좋은 사람들이에요. 빛나는 외모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게 아니라 실력에 기반을 뒀기에 롱런할 수 있었죠. 후배들이 그런 자세를 갖췄으면 합니다” 25년차 베테랑의 관록이 느껴지는 지적이었다.좁은 무대를 나와 크나큰 대양(大洋)으로 나선 윤영미호의 궁극적인 항해 목표는 어디일까. 인터뷰 내내 똑 부러졌던 그답게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육지는 물론 지도 밖의 신대륙까지를 바라보고 있었다.“20년 동안 홈쇼핑계의 선두주자가 될겁니다. ‘완판녀’라는 별명도 얻고 싶고요. 홈쇼핑계의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게 목표입니다. 나이 많은 여자 아나운서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타파하고 싶어요. 외국의 경우처럼 60, 70이 되어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자 아나운서의 선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스포츠투데이 이기범 기자 metro83@<ⓒ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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