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강원도 영월 북면 문곡리 마차초등학교 문곡분교 정문 앞에 쓸쓸하게 자리한 작은 매표소.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오는 버스 승차권을 파는 이 매표소는 올해 84세인 정복년 할머니가 지키고 있다.
정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난리를 피해 순경이던 남편을 따라 외딴 산골마을 문곡리로 들어왔다. 이 마을은 1935년에 생겨 마을의 젖줄 노릇을 하던 영월광업소가 번성할 땐 제법 살 만했지만 1986년 광업소 가동이 끊기고 면소재지마저 마차리로 옮기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젊은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나갔고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여든을 훌쩍 넘긴 정 할머니가 마을 노인회장을 맡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막내인 이장이 50대일 만큼 마을이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마을이 쇠락하는 동안 정 할머니는 네 아들을 꿋꿋이 길렀고 문곡분교에서 초등학교를 졸업시켰다. 마차리의 한 공장에서 경비용역으로 일하는 큰아들(김세진ㆍ64)을 뺀 나머지 세 자녀가 모두 도시로 나갔는데도 정 할머니가 마을을 지킨 건 네 아들과 자신, 먼저 보낸 남편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문곡분교가 한 가닥 희망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문곡분교를 기반으로 마을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갖고 있었다. 정 할머니는 "학교만 남겨놓으면 언젠가 마을에 아이들이 다시 들어오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우리 죽으면 이 마을도 없어지지 않겠느냐"며 허탈하게 웃던 정 할머니는 "폐교 결정을 할 때 마을 사람들 생각을 들었다지만, 사실 정부가 다 정해두고 통보만 한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정 할머니의 희망으로 남아있던 문곡분교. 1933년 개교한 이 학교는 78년 역사를 뒤로 한 채 오는 18일 마지막 졸업식을 끝으로 28일 폐교된다.김효진 기자· 정준영 인턴기자 hjn2529@<ⓒ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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