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팀
이길여 경원대 총장
[총장님의 책 14편]"역경에 맞서는 해답, 유머와 해학"이길여 경원대학교 총장이 말하는 책 ‘유머산책 산민객담’바람이 불지 않으면 바람개비는 돌지 않는다. 바람이 거셀수록 바람개비는 힘차게 돈다. 어려움을 헤쳐나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다. 올해 대학 신입생들은 대부분 1992년생이다. 나와 꼭 60년이 차이나는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에게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런 세찬 바람을 맞이할 것인지를 들려주고 싶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조금은 가볍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바로 '유머와 해학'이다.책 '유머산책 산민객담'의 저자 한승헌 변호사. 31살인 1965년 변호사가 됐지만 그 해 공안당국이 소설 '분지'의 작가 남정현 씨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그의 인생은 거센 파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에 그는 대형 시국사건이 있으면 어김없이 법정에 섰다. 동백림 간첩단 사건, 민청학련 사건, 통혁당 사건 등 박정희 정권 때의 시국사건이 모두 그의 몫이었다. 5공 때 부천서 성고문 재정신청 사건, 보도지침 폭로 사건, 6공 때 문익환 목사 방북, 임수경씨 방북 사건까지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8년 동안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고 2번에 걸쳐 21개월이나 감옥에 있어야 했다.하지만 그런 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조금 뜻밖이다. 그는 1975년 반공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돼 8년 동안이나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로 인해 그는 영세한 출판사를 차려 생계를 꾸려야 했다. 초등학생이던 막내 자녀는 아버지의 직업을 제대로 적어낼 수가 없었다. 그런 역경속에서도 그는 심판관석, 검찰관석, 변호인석을 거쳐 피고인석, 방청석까지 순례했다고 자랑한다. 감옥만 해도 서울구치소, 육군교도소, 김천 소년교도소까지 우리나라 네 종류의 교도소 가운데 세 종류를 겪어봤다고 너스레를 떨고 청주에 있는 여자교도소에 못 가봤다고 아쉬워한다. 책의 제목대로, 유머와 해학이 듬뿍 묻어나는 글들이다.이런 유머와 해학의 힘이 있었기에 그는 시대 앞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다. 유명한 민청학련 사건 변론에서다. 비상보통군법회의 법정에서 누군가가 애국가를 선창했다. 심판부는 피고인 전원 퇴장명령을 내렸다. 피고인석은 비고 빈 의자만 남았다. 한 변호사가 항변했다. "나는 피고인으로 묶여있는 청년 학생들을 변호하러 온 것이지, 법정 바닥의 빈 의자를 변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쯤되면 재판부도 손을 들 수 밖에 없다.소탈한 책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조금 심심할 수도 있는 책이다. 하지만 깊은 책이다. 읽을수록 맛이 난다. 엄혹한 시대를 거쳐 온 우리 사회의 원로가 어떤 힘으로 그 난관들을 돌파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한 변호사 스스로도 "험난으로 점철된 내 지난 날의 삶 속에서 그나마 해학 마인드(?)라도 작동하고 있었기에 그런대로 여유와 낙관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조용히 털어놓는다.나는 전라북도 시골에서 시작해 서울과 일본,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이 배움으로 가천길병원을 세우고 평생 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데 헌신해왔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그나마 20대 사망자의 절반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딱한 일이다. 시련과 좌절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유머와 자그마한 여유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마음을 지울 길 없다.어려운 사건만 골라 맡으며 거의 승소하지 못했으니 평생에 걸친 변호사 생활이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짓궂은 물음에도 그는 유머를 던진다. 한발쯤 물러서서 조금 여유 있게 바라보며 웃어넘길 줄 아는 지혜가 담겨있다. "내가 변호한 사람치고 석방 안 된 사람이 없다. 최소한 만기 석방은 다 되었다."< 이길여 경원대학교 총장 >유머산책 산민객담/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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