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홍기자
1996년 여름 김영주씨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건강한 모습으로 스포츠활동을 했을 당시 모습.
도전 첫 월급의 감격결국 그는 스스로 돈을 벌어 세상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젊고 건강한 사람들도 IMF 외환 위기 한파로 직장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1급 장애인인 그가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길은 불가능해 보였다.그래서 생각한 게 보험업이었다. 타고난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을 밑천으로 영업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더욱이 교통사고 경험을 살려 자동차 보험 등을 파는 보험 맨으로 변신하면 좀 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보험업 진출은 생각처럼 그리 녹록치 않았다.“우선 지인의 도움으로 한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취업을 하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그쪽에서는 반갑게 맞아주며 이력서를 보내줄 것을 요구했고, 정성껏 이력서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일할 곳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돌아 왔습니다. 몇 번이고 이곳저고 이력서를 넣고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지요.”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그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한번 같이 일해 봅시다.”그는 아직도 그 한 마디 말을 잊지 못한다. 삼성화재 이천지점 관계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는 뛸 듯이 기뻤다. 그는 무엇보다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2004년 1월 취업에 성공한다. “첫 월급으로 140만 원이 통장에 들어온 것을 보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 중에서 100만 원은 저를 도와주던 활동 보조인에게 주고 달랑 40만 원 밖에 남지 않았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스스로 돈을 벌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현재 김씨는 활동 보조인이 승용차에 태우고 서류를 챙겨주는 등 업무를 도와주고, 김씨는 지역 행사 현장 등을 찾아다니며 영업 활동을 한다. 어깨 이하로는 감각이 없고 팔·다리도 움직일 수 없지만, '마우스 스틱'이라는 도구를 입에 물고 컴퓨터 키보드를 친다. 김씨는 “자판을 다 외워서 빨리 치면 분당 100~150타는 나올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무엇보다 스스로 노력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하다. 특히 첫 월급을 탔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기뻤다고 한다.“첫 월급을 받았을 때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젊고 건강하던 시절 당당하게 받았던 월급에 비하면 아주 적은 돈이었지만 제2의 인생을 시작해 받아본 월급이어서 감격스러웠습니다. 그의 요즘 평균 월급은 130만 원 정도다. 활동 보조인에게 지급하는 돈만 한 달에 60만 원(정부 보조금 약 55만 원 제외)이라 남는 게 그리 많지 않다. 남는 돈은 고객에게 선물을 보내는 등의 개인 영업비로 쓰고 부모님 용돈도 드린다.“PC를 통해 전신장애를 극복한 한국계 미국인 정범진 검사의 얘기가 인생의 전환점이 됐죠.”배신 활동 보조인의 사기 그렇게 열심히 살던 그도 늘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손과 발이 되어 주던 활동 보조인이 갖고 있던 그의 중고 자동차와 현금 150만 원을 몰래 훔쳐 달아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자동차와 활동 보조인을 잃은 그는 며칠간 잠도 못자고 고민에 빠져 살아야 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돈을 갖고 사라진 사람을 찾아 중고 자동차를 돌려받는 것으로 일단락했지만 그는 돈보다 더 큰 것을 잃었다며 씁쓸해 했다. “돈은 열심히 해서 벌면 되지만 형처럼 따르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나니, 세상이 참 싫었습니다. 물론 오죽했으면 1급 장애인의 돈을 훔쳐 달아났겠냐는 생각도 하지만 ‘벼룩의 간’을 빼먹는 현실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용서하기로 했습니다.”그는 그 일로 인해 급여가 평소보다 50% 이상 줄어 한동안 힘겨운 생활을 해야 했다. 희망 새 희망을 노래하다그는 최근 좋은 일이 하나 생겼다. 김씨의 ‘든든한 다리’ 역할을 해주는 새 전동 휠체어를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얻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전동 휠체어 구매 보조금을 지원해주지만 보통 제품들은 무게가 80~150㎏에 달하고 승용차에 싣기가 어려워 이동만 가능하고 일을 하기에는 어렵다. 그래서 김씨는 비싼 돈을 써서라도 가볍고(약 40㎏) 반으로 접기도 편한 전동 휠체어를 외국에서 구입(약 700만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방광 결석으로 입원해 수술을 받고 기흉(폐를 둘러싼 흉막에 공기가 차는 병)이 있는 어머니 병원비까지 대야 할 처지라 고민이 컸다. 다행히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또 그는 오래 전부터 꿈꿔온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장애인들의 힘겨운 삶을 소개하고 어렵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란다.“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지난해 제가 쓴 수기를 보고 한 비장애인이 자살을 하지 않은 일이 있어요. 얼마나 다행입니까.”김영주씨의 손과 발이 되어준 활동보조인 백성호(46·맨 오른쪽)씨와 박상욱 삼성화재 이천지점장과 함께.
행복 결혼 그리고 사랑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그는 요즘 여자 친구와 데이트에 푹 빠져 있다. 결혼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4년여 간 사귄 여자 친구와 영화도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놓고 토론도 하고 행복하단다. "그녀와 결혼을 할 거냐”는 질문에 ‘노코멘트‘ 했다. 사랑은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좀 더 고민을 해야 봐야 할 것 같다고 말끝을 흐렸다. “전신장애를 가진 사람의 수명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소변을 연로하신 부모님이 대신 받아주고 고생하는 걸 보면 몸서리 처질 정도로 싫지만 열심히 살 생각입니다. 불행은 그 누구에게도 올 수 있습니다. 자기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갖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삼성화재, 장애인식개선사업 큰 효과최근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활발한 가운데 삼성화재가 진행하고 있는 ‘장애인식개선사업’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업들이 구호로만 외치는 일회성 사업이 아닌 실질적인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부터 삼성화재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이 사업은 장애인의 사회 적응과 비장애인들의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실제로 삼성화재는 국립특수교육원 등과 연계한 ‘장애-비장애 통합캠프’를 마련해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 해소 등에 나서고 있다. 삼성화재 신현근 홍보부장은 “장애인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진행도 기업의 중요한 사회공헌의 하나”라면서 “기업들의 활발한 참여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이코노믹리뷰 김재홍 기자 ato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