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에서] '독고탁, 골프에 빠지다~' 이상무

[아시아경제 손은정 기자] '만화가' 이상무(65·사진).한 번도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45년 동안 오직 만화가의 길만을 걸어온 장인(匠人)이다. 하지만 그의 직업 속에서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야구에 푹 빠져서 독고탁을 탄생시켰고, 지금은 골프에 심취해 골프레슨서도 쓰게 됐다. '만화'로 온 세상을 이야기한 이상무 화백을 만났다. ▲ 고집불통의 역작 '독고탁'= 1970년대는 한 달에도 수백권의 새 만화책이 쏟아졌다. 동네 만화가게 마다 어린 아이부터 삼촌뻘 아저씨까지 해지는 줄 모르고 '만화삼매경'에 빠졌던 시절이었다. 인기 만화가 이상무 화백은 1966년, 그의 나이 약관(弱冠)에 연재만화 '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했다. 박기정과 박기준 선생의 문하생이었지만 고집이 세서 스승이 청탁받은 작품을 아예 본인 이름으로 썼다. 어쩌면 이 화백의 소질을 스승도 일찌감치 인정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상무라는 이름보다 더 유명한 '독고탁'이 탄생한 건 1971년이다. 당시 가난했던 시대상을 투영하면서도 말썽꾸러기 캐릭터였다. 이후 10여년간 독고탁은 이 화백의 여러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등장했다. '태양을 향해 던져라', '다시 찾은 마운드', '내 이름은 독고탁' 등은 영화로도 제작됐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에는 허구 속에서도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해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 아마추어라 더 잘했던 '만화레슨'= 골프와의 인연은 1988년 故고우영 화백과 허영만 화백의 권유로 맺어졌다. 이 화백은 "만화가야구단의 선수로 나서 합숙훈련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스포츠광이었지만 사실 골프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면서 "당시에는 테니스에 깊은 관심이 있어 오히려 동료 만화가들에게 테니스를 권유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시작한 골프지만 이제는 '골프만화 전문가'라는 타이틀까지 달게 됐다. "모 스포츠지에서 일본의 레슨교본을 우리말로 재구성해 달라는 청탁을 받은 게 시초"라는 이 화백은 "소재가 떨어지면서 (내가) 직접 자료를 찾아가며 연구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한동안은 티칭프로 자격증을 따러 미국 유학을 고려하기도 했다이 화백은 "아마추어골퍼가 쓰는 레슨이 더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골프만화에 더 애정을 쏟게 됐다"면서 "내가 실전에서 범했던 실수가 만화에 반영됐다"고 한다. 아마추어의 공감을 얻어냈던 까닭이다. '불타는 그린', '운명의 라스트 홀', '싱글로 가는 길' 등의 골프만화를 발표했고 여러 매체를 통해 골프를 소재로 연재물을 제작하고 있다. ▲ 골프의 왕도는 '연습'= 공식핸디캡은 9, 전성기 때(?)는 4일 정도로 골프기량도 수준급이다. 베스트스코어는 레이크우드골프장에서의 68타, 그것도 챔피언티다. 이 화백은 그러나 "물리적으로 골프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지만 이제는 몸이 안 따라 준다"며 아쉬움을 남겼다.1년 전 위암선고를 받았던 이 화백은 다행히 초기발견으로 종양을 제거한 뒤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다시 얻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서울 광화문 자택에서 마포 작업실까지 매일 걸어서 출퇴근할 정도다. 당연히 골프도 예전만큼 즐기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화백은 그래서인지 "골프는 안하면 자꾸 무너진다"면서 "선수들의 동계훈련 역시 기본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한다.골프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각별하다. 얼마 전에도 초보골퍼를 위한 골프만화 '왕초보 골프가이드'를 펴냈다. 대학 강단에 서 줄 것을 요청받기도 했지만 "나는 '만화가 이상무'가 좋다"고 거절했다. 손으로 일일이 스케치하고 채색하던 시절을 지나 컴퓨터로 모든 작업이 이루어지는 시대로 건너왔지만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손은정 기자 ejson@사진=윤동주기자 doso7@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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