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우의 경제레터] 운명의 수레바퀴

〈이번 주부터 토포하우스(www.topohaus.com)의 오현금 사장님께서 경제레터 필진에 합류합니다. 오 사장님은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아트&디자인 갤러리 부문에서 새로운 영역을 찾는데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오랜 외국생활과 국내외 대학의 강단, 아트&갤러리 분야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녹여내는 오 사장님의 톡톡튀는 글들은 새로운 하루를 설계하는데 많은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을이 짙은 토요일 아침, 일상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나 자신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습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호사를 누리고자 혼자서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파리보다 더 매력적인 프랑스 패션작가 사라 문의 사진 전시를 보았습니다. 1941년 태어난 사라 문은 9년간 오뜨 꾸뛰르에서 패션 모델로 유럽에서 활동한 후 29세에 카메라와 만났습니다. 드가의 그림처럼 흐릿하면서도 진한 여운을 주는 사라 문의 사진들 앞에서 나는 멋진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통한 떨림과 더불어 전시장 가운데에 마련된 조그만 부스에서 15분짜리 단편영화 “서커스”를 볼 수 있는 건 큰 축복이었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사라 문의 방식으로 영상 작업을 한 것입니다.“좋지 않은 한 해였다.서커스 단원 나타샤는 눈이 오는 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국인 연인과 떠나버린다. 단원들은 하나 둘 떠나가지만 둘째 딸 잔느는 엄마를 기다린다. 사랑에 빠져 서커스장을 떠나버린 엄마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 날이다. 그러나 서커스에는 불이 켜지지 않는다.눈이 내린다.잔느는 금색 드레스를 입고 성냥을 팔러 나간다. 뛴다. 이 거리 저 거리를, 기차역에 도착한다. 한 해의 마지막 저녁,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도로 중앙에서 성냥을 사라고 외쳐보지만 아무도 없다. 트럭이 휙 지나가고 하마터면 잔느는 죽을 뻔 했다.성냥으로 몸을 녹이고, 눈을 감고 꿈을 꾼다. 별이 떨어지고, 성냥불을 지핀다. 그러자 운명의 수레바퀴에 달려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잔느는 죽고...또 다시 눈이 내린다.”가을이 깊어 겨울이 다가옴을 느끼면서, 머리 속에는 숱한 생각이 엉키고 가슴 속에는 말할 수 없는 그리움, 안타까움, 애잔함으로 절로 눈물이 납니다. 20년 전 유학생이란 이름으로 드나들던 파리 퐁피두센터. 도서관 가운데 있는 조그만 부스에서는 좋은 필름이 매일 상영되고 있었습니다.나는 나 자신을 그 부스 속에 넣어두고 싶었습니다. 잠시라도. 하지만 논문을 빨리 써야하기에 1분도 낭비할 수가 없었고 두 아이를 돌봐야하는 엄마였기에 1초의 여유도 없었습니다.안타까움만 잔뜩 안고 기웃거리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또한 여유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커스’의 영상이 계속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슴 깊이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잔느의 죽음-그래 맞다. 엄마를 기다리다 추위를 이기지 못해 엄마를 꿈꾸며 죽는 어린 소녀의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잔느의 죽음보다 더 공감하는 것은 나타샤의 탈출입니다. 모든 것, 즉 일과 자식을 버리고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자신의 터전을 떠나버릴 수 있었던 나타샤처럼 나도 훌쩍 떠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는게 아닌지요. 내 나이쯤의 우리 모두가 한번쯤 가져볼 수 있는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가을은 짙고 낙엽은 떨어지는데 일상을 모두 버리고 훌쩍 떠나고 싶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달려있건 말입니다.토포하우스 오현금사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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