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김치명인-손맛의 비밀은 육수

전통비법' 계승 박영숙씨

광주김치축제 참가 3회 연속 수상한 김치장인 아삭 씹는 '감동젓무'ㆍ보성특산 '개미지' 일품 "한국의 아름다움ㆍ한국인의 고집 버무려야"  

'전통비법'을 계승해 우리 김치의 전통을 되살리는 노력을 해온 박영숙씨

예전에는 김치맛을 보면 그집의 음식맛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김치 솜씨만 있으면 다른 음식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때문에 장성한 딸을 둔 어머니들은 김치 담그는 법을 전수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지금은 세월이 변해 대형마트에 가 종류별로 진열돼있는 김치를 고르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 됐지만…. 하지만 여전히 손맛나는 김치를 담글 수 있다는 것은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는 최고의 자랑거리다. 박영숙씨(54)는 김치 맛으로는 둘째가는 것이 서러운 '명인'이다. 지난 2005년부터 3년 연속 광주김치축제에 참가해 최우수상 2번과 우수상을 연거푸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장기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전라도식 김치를 맛깔스럽게 담그는 것 이다. 특히 2005년에는 보성의 전통김치인 '개미지'를 새롭게 선보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개미지'는 재래종 홍갓잎을 깻잎김치 담그듯 만드는 김치를 말한다. 전어, 병어 등 각종 해산물과 밤, 대추, 흰파, 홍시 등을 썰어 고명으로 켜켜이 얹는 방식이다. 보성지역 전통 김치이지만 상당한 공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지금은 만나보기가 쉽지 않다. 박씨는 "친정 어머니가 담갔던 '개미지'의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답니다"라며 "어렴풋한 기억을 토대로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개미지'를 완성, 김치축제 첫 수상의 기쁨을 안았죠"라고 설명했다.
박씨에게 우수상을 안긴 작품은 '감동젓무'다. 5월에만 나오는 작은새우를 곰삭혀 만드는 감동젓은 예로부터 양반들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옅은 보라빛이 감도는 감동젓에 낙지, 전복 등 해산물과 깍둑 썬 무를 절반씩 섞으면 감동젓무가 완성된다. 감동젓무는 담근 직후 아삭한 맛도 좋지만 항아리에 푹 묵히면 최고의 술안주가 된다. 보쌈김치부터 매화김치까지 못하는 김치가 없는 박씨의 손맛 비밀은 바로 육수에 있다. 일반적으로 김치를 담굴 때 생수를 사용하는데 반해 박씨는 '비법 육수'를 사용한다. '비법 육수'는 식용 국화꽃과 늙은 호박 등을 넣어 만든다. 만들어진 육수는 김치 담글 때 들어가는 물 대용으로 사용된다. 또 김장용 찹쌀풀을 만들 때도 이 육수를 사용하면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감칠맛을 낼 수 있다. 박씨는 "김치연구를 위해 과거 문헌을 읽다 국화를 육수로 활용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어요"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들의 건강 유지에 국화와 호박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숨은 비법은 또 있다. 김장용 배추는 직접 해남에 가서 골라오고 고추도 고향 보성에서 공수해온다. 번거롭고 값비싸지만 철저히 국산 재료를 사용해 정성껏 담그는 것이 박씨의 비결인 것이다. 김치를 제대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많은 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겠다는 욕심으로 이어졌다. 이에 박씨는 올해 초 한정식 전문식당을 차리고 그간 연구ㆍ개발한 전라도 김치와 음식을 선뵈고 있다. 박씨는 "젊은층의 입맛이 서구화되다보니 김치도 표준화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라면서 "한국의 아름다움과 한국인의 고집스러움을 맛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김치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지요"라며 활짝 웃었다.
◆박영숙씨는 보성에서 태어나 장성으로 시집을 갔다. 덕분에 전라지역 김치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며 다양한 김치를 만들어왔다. 김치 연구의 욕심을 품게되면서 지난 2005년 전남과학대학 호텔김치발효학과에서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뒤이어 호남대학교 조리학과에 진학한 뒤 광주김치축제에 참가, 3번의 상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한국국제요리 경연대회에 향토음식으로 출전해 금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광주 남구 봉선동에서 한정식 '명인'을 운영하며 김치 연구를 하고 있다. 광남일보 정문영 기자 vita@gwangnam.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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