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기자
[연인들]. 르네 마그리트. 1928.
이 그림에는 수수께끼가 있다. 누가봐도 담배 파이프로 보이는 정교한 그림을 그려놓고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적어놓았다. 이렇게 황당한 경우가 또 어딨을까. 파이프가 아니면 이 그림은 무엇이라는 것인가.마그리트는 '이것'이라는 지칭어는 '파이프'가 아니므로 밑의 문장은 틀린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다. 왜 우리는 '이것'이 위의 파이프 그림을 가르킨다고 단순하게 생각했을까?참고로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이다.[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마그리트. 1929
그림 속 말은 문, 시계는 바람, 달걀은 아카시아, 구두는 달, 모자는 눈이라고 각각 명기돼 있다. 파이프 그림을 보고나니 이제는 이 그림도 '확실히 잘못됐다'고 말하기가 조금 어려워졌다. 혼란스럽다.[꿈의 열쇠]. 마그리트. 1936.
마그리트는 이같은 그림의 종류를 수없이 그려냈다. 그가 가졌던 의문은 과연 '말이 사물을 보여줄 수 있을까'다. 그는 작업노트에서 "사물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우리가 그보다 더 적합한 이름을 찾을 수 없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저 우연히 마주칠 뿐 절대 말이 사물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젠 이성적이라고 믿는 우리의 '지성'도, '맛있는 사과'도 모두 'au revoir(굿바이)'[두가지 신비]. 마그리트.
이제 우리는 이와같은 놀이에 참여할 것인가 혹은 혼란에 휩싸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자, 이제 당신은 마그리트가 반복해 왔던 상식의 부정에 동참할 것인가?유리창 '밖' 풍경과 유리파편 '속' 풍경 중 어떤 것이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인가?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구분해 낼 것인가. 이 그림은 우리가 아무 의심없이 '그러려니'했던 의식을 벗어날을 때 겪게될 혼란스러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저 예매한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진정한 모습일지도 모른다.[저무는 해]. 마그리트.
과연 저 숲은 그림 '안'에 있는 걸까 아님 '밖'에 있는 걸까. 이같은 물음은 의식(안)과 객관적 세계(밖)를 우리가 구분해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도 바꿀 수 있다. 마그리트는 이같은 종류의 그림을 수없이 그려냈다. 그가 진정 알고 싶어했던 것은 우리가 '본질'이라고 부르고 '존재'라 부르짓는 것들이 과연 '착각'에서 빚어진 감각적 오류가 아닐까.[폭포]. 마그리트. 1961.
솔직히 우리는 내 눈으로 푸른 하늘을 보는 것인지, 푸른 하늘이 내 눈에 보여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정답도 없다. 오히려 이는 어쩌면 인간이 신체와 정신을 분명히 분리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말도 안되는 '이분법적 사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하룻밤 쯤은 나의 코기토(cogito)에 대해 처절하게 고민해봐야 수동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가짜거울]. 마그리트.
교묘한 믿음 아래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 모르게 만드는 모호한 관계들이 끔찍하게 와닿을 때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내게 '숨'을 불어넣고 나는 그 무의미한 것들에 집착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리의 그림처럼 기억의 집요함에 지쳐 흐물흐물거리면서...[기억의 집요함]. 살바도르 달리.1931
이현정 기자 hjlee303@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