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일이 삶의 모든 의미입니다. 일하는 순간 살아있는 것을 느끼고 삶의 원동력이 생겨요. 제 인생의 마지막 남은 시간을 연기와 사랑을 나누며 보내고 싶어요."
배우 김해숙은 사랑에 빠진 열여덟 소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의 대상이 남자가 아니라 연기라는 것이다. 현재 출연 중인 MBC 아침드라마 '하얀 거짓말'부터 거슬러 올라가도 영화 '박쥐' '경축! 우리사랑' '무방비도시',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 '미우나 고우나' '불한당' 등 최근 2년간 출연작만 8편이다. 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 "일중독이 아니라 일을 너무 사랑한다"
김해숙은 "일중독이라기보다는 일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범한 직장이라면 은퇴를 생각할 나이인 50대에 김해숙은 여느 20대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보통사람 생각으론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지만 미친 듯이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해할 겁니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백이 거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영화와 드라마에 동시에 출연하기도 한다. 겹치기 출연이라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겹치기 출연을 한다고 해도 결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이 틀리지 않음은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와 함께 촬영했던 영화 '무방비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SBS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과 영화 '박쥐'에 이어 김해숙은 아침드라마 '하얀 거짓말'에서 백화점 회장 신여사 역으로 출연 중이다. '조강지처 클럽'의 양순과는 정반대의 조건을 지닌 인물이다. 재단공장 여공에서 수백억원대 자산가가 된 신화적인 인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섭고 독하게 살아온 캐릭터다.
"양순으로 살 때는 살집도 좀 넉넉한 엄마일 것 같아서 거기에 맞춰 몸을 만들었더니 끝나고 나니까 살이 너무 쪄있었어요. '햐안 거짓말'에서는 그런 몸매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2개월 사이에 6kg을 뺐어요. 나이 때문인지 힘든 정도가 아니라 거의 죽음이었죠. 원형탈모까지 생겼어요. 하루 종일 운동하고 살 빼는 데만 시간을 투자했어요."
● 2008년, 최고의 해를 보내다
'하얀 거짓말'에서 신여사는 그릇된 모정으로 자식에게 잘못된 결과를 안겨주는 인물이다. "어려웠죠. 비슷한 게 아니라 극과 극의 캐릭터니까. 양순에게 1년 빠져 살다가 전혀 다른 세계인 신여사로 옮겨갔죠. 처음엔 외모부터 모든 게 힘들었는데 지금은 두 달 정도 지나서인지 익숙해졌어요. 백화점 회장이라는 캐릭터 때문에 의상 구입비로 출연료를 거의 다 쓰기도 했죠."
지난해 한 해는 김해숙에게 최고의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편의 영화가 개봉했고 그 영화들로 각종 영화시상식 후보에 올랐다. 드라마는 최고의 시청률로 인기를 얻었다. 딸의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엄마에서 소매치기 엄마, 콩가루 집안을 지키는 한 많은 엄마까지 오십보백보인 수많은 엄마 역할들 중에서도 김해숙이 연기한 '엄마들'은 유난히 새롭고 독특하고 강렬했다.
하나의 얼굴로 인자하고 수줍고 애처롭고 독하고 잔인하고 무덤덤한 인물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김해숙의 팔색조 같은 연기는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형 배우와 창조적인 예술가형 배우의 차이를 보여준다. 김해숙이라는 배우의 장점은 끊임없는 노력과 인생의 굴곡을 거치며 체득한 삶의 다양한 표정, 뜨거운 열정의 조화에 있다. 김해숙의 차기작이 그 어떤 스타 배우보다 더 기대되는 건 캐릭터를 창작하는 그의 창조성 때문이다.
고경석 기자 kave@asiae.co.kr 사진 박성기 기자 music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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