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4개 국가는 ‘아시아의 네마리 용(Four Asian Dragons or Tigers)’으로 불렸다. 1980~1990년대 일본 외에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한 아시아의 신흥 경제 공업국을 일컫는 말이다. 이 국가들이 현재까지도 가진 유일한 공통점은 모두 고령화 시대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 중에서 대만 16.8%, 한국 17.5%, 싱가포르 18.4%, 홍콩 19.7%이다.
이중에서도 싱가포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IMF(국제통화기금)가 발표한 2023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무려 9만1100달러다. 싱가포르는 1965년에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대표적인 도시 국가로 2023년 인구 594만명이다. 국민의 80% 이상이 정부 주택개발청(HDB)에서 개발한 공공주택 단지에서 살고 있는 등 정부 주도적이고 체계적인 발전을 이룩한 곳이다. 이런 강점을 바탕으로 정책 수립에 있어서 높아지는 기대 수명과 고령 인구 비율 증가에 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싱가포르를 두 번 방문했다. 싱가포르에서 지내는 동안 어딜 가든 일하는 시니어들을 잔뜩 만날 수 있었다. 호텔 예약확인부터 청소, 서빙뿐만 아니라 판매원, 공유사무실의 사무직까지 그야말로 다양했다. 현지인이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노인과 장애인들의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죽기 전까지 일해야 한다는 의식, 즉 정부 정책과 분위기가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고령화에 대해 통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일방적인 복지 제공이나 지원보다는 시니어 세대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직접 참여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한다.
싱가포르 보건부(MOH)는 여러 부처와 함께 2016년부터 ‘성공적 노화를 위한 실행계획(The Action Plan for Successful Ageing)’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총 12개 활동영역의 실천방안이 매년 발표되는데 보건복지, 학습, 고용, 자원봉사활동, 교통, 존중과 사회참여, 건강 및 돌봄, 공공구역 등으로 나뉘어 싱가포르 전역에서 실행한다. 올해 집중 분야로는 ‘60세 이상의 생산성과 급여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안’, ‘은퇴자들이 체계적으로 자원봉사 시스템으로 진입하기 위한 방안’, ‘웰다잉에 대한 준비’, ‘시니어 친화적인 공원 설계’ 등이 포함되었다. 이 중 ‘치매 발현 후 증세 완화를 위한 색감 활용 마을 설계’와 ‘스포츠를 통한 세대간 교류 촉진 기회 제공’이 특히 흥미로웠다.
또한 보건부의 지원으로 2007년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으로 C3A(Council for Third Age)도 있다. 시니어 세대가 사회의 필수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의미 있는 성취를 할 수 있도록 평생학습, 봉사활동 및 긍정적 노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에 대한 파트너십을 촉진하고 지원한다. 평생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아 국립실버 아카데미(NSA)도 운영하는데, 인상적인 것은 동년배들과는 물론 학생들을 비롯한 젊은 층과도 관계를 형성하도록 지원한다. 싱가포르 노동부(MOM)에서는 62세 이상의 자격을 갖춘 시니어들에게 매년 65세까지 고용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재고용 기회를 보장하는데, 67세까지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때, 인상적인 점은 시니어 세대들이 더 안정적이고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유연한 업무 조건을 제공하도록 인식 개선 및 지원 업무 또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령층에 대한 고용이 높아지고 있어 노인 부양 부담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실버타운이라 해야 할지 노인마을 공동체라 해야 할지, ‘캄풍 애드머럴티(Kampung Admiralty)’도 대단했다. 싱가포르 주택개발청(HDB)이 2018년 완공했다. ‘캄풍’은 말레이어로 마을이란 뜻인데 거주민들끼리 서로 돕는 문화를 담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캄풍’ 복원을 위해 다세대 건물의 임대 기간을 30년으로 늘리고, 55세 이상의 시니어들을 입주할 수 있게 했다. 축구장보다 큰 규모로, 총 11층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100동의 노인용 아파트, 의료시설을 제공하지만, 지역 사회의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어울릴 수 있게끔 섬세하게 구성했다. 전철과도 바로 연결되고 푸드코트, 은행, 사회 활동 공간 등 다양한 시설을 개방형으로 설계해 공공의 이익을 염두에 뒀다. 예를 들어, 6~7층에는 시니어와 아동 돌봄센터를 함께 배치하고 일부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해 세대 교류의 장을 마련했다. 고령층이 거주하기 편한 디자인과 미끄럼 방지 바닥재 사용은 기본이었다. 시니어 세대가 집안에만 있지 않도록, 지역 주민과 쉽게 모여 운동도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녹색 공원 등 공공시설을 많이 만들었다. 2018년에는 ‘올해의 세계건축상’을 받으며 건축학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작년에는 서울시장과 우리 정부 기관, 노년학 연구자들이 찾아가 ‘통합형 거주공간’을 견학했다.
아직까지 견학이나 탐방을 다녔을 때, 일본만큼 세심하게 시니어 시설과 정책들을 완비하는 곳은 없었다. 그렇지만 싱가포르 출장에서 놀라웠던 점을 요약하자면, Nee Soon이라는 싱가포르의 첫번째 치매 친화 지역에서 일본과 비슷한 안도감을 느꼈다. 이 지역은 3D 공간을 체험하듯 아파트 건물과 상가 건물, 시장에도 인지가 잘 되는 색을 선별해서 칠하고, 특별한 표시를 통해 인지 장애가 있는 시니어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싱가포르는 시니어 세대를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자립의식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더불어 세대간, 계층간 교류를 자연스레 확대해 정서적 유대감을 만들며, 서로 돕는 전통 문화를 복원함으로써 공동체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이를 통해 신체적 노화와 질병까지 대처하겠다는 목표는 웅장하고 공감이 간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가?
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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