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 급증에 예약제·유료화 논의
지속 가능성 고려한 합리적 설계를
이광호 문화스포츠팀장
국립중앙박물관의 2025년 누적 관람객이 650만명을 넘어섰다. 2024년보다 1.7배 늘었고, 용산 이전 첫해인 2005년과 비교하면 4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2024년 기준 연간 600만명 이상이 찾은 박물관이 루브르·바티칸·영국박물관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숫자만으로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미 세계 주요 박물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만하다.
성과가 커질수록 질문도 선명해진다. 지금의 운영 방식으로 이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관람객 급증과 함께 유료화 논의가 다시 떠오른 배경이 여기에 있다. 정부는 올해 예약제를 도입하고, 이르면 2027년 유료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유료화의 시점과 방식 검토를 공식화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 무료 관람은 오랫동안 문화 복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다만 이는 절대 원칙이라기보다 정책적 선택에 가까웠다. 상설전 관람료는 2008년까지 2000원이었고, 이후 문화 향유권 확대라는 명분 아래 무료로 전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무료화 이후 15년 넘는 시간 동안 관람 환경과 운영 구조를 함께 재설계하려는 논의와 투자는 충분하지 않았다. 원칙은 남았지만, 이를 떠받칠 시스템은 헐거워졌다.
유료화가 거론될 때마다 '문화의 상품화' '공공성 후퇴'라는 비판이 반복된다. 하지만 지금의 쟁점은 문화에 값을 매기느냐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운영 구조를 만들 수 있느냐에 가깝다. 무료 관람을 전제로 관람객 수만 늘리는 방식은 전시의 질과 관람 경험을 함께 소모시킨다. '많이 찾는 박물관'이 되는 것과 '잘 머무는 박물관'이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해외 주요 박물관의 운영 방식은 비교적 분명하다. 유료 관람은 예외가 아니라 기본이며, 상설전과 기획전을 구분해 요금을 부과한다. 여기에 기부·후원과 상업 수익을 결합해 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한다. 상설전을 무료로 개방하는 사례도 있으나, 막대한 국고 지원과 성숙한 기부 문화라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특수한 모델이다. 한국 사회가 아직 그 조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유료화를 속도전처럼 밀어붙이는 것이 답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시장 논리만으로 운영될 수 없는 공공 문화 인프라다. 학생과 노년층, 문화 소외 계층에게 박물관은 비용 부담 없이 역사와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접근성을 훼손하는 유료화는 공공성 자체를 흔들 수 있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은 찬반이 아니라 설계에 맞춰져야 한다. 상설전은 무료 또는 매우 낮은 수준의 요금을 유지해 공공성의 안전판으로 남겨야 한다. 대신 기획전과 프리미엄 콘텐츠에는 명확한 차등 요금을 부과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깊이 있는 전시와 서비스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구조는 관람 문화의 성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청소년·취약계층 상시 무료, 특정 요일·시간대 무료 개방, 연간 회원제 도입 역시 부차적 선택이 아니라 설계의 핵심 요소다. 외국인 관람객 요금 조정도 금기일 이유는 없다. 다만 차별이 아니라 '기여'의 논리로 설명돼야 한다. 추가 수익이 전시 개선과 공공 서비스 확충으로 환원된다는 점이 분명할 때 사회적 수용성도 확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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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유료화는 결국 피하기 어려운 선택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다. 충분한 논의와 정교한 설계 없이 추진되는 유료화는 반발만 키운다. 정책은 서두를수록 흔들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앞으로도 '국민의 박물관'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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