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제주 교사 교내서 사망
밤낮 없이 학생 측 민원 전화 시달려
교사들 "서이초 이후 변한 것 없다"
"이제는 이런 일에 익숙해진 것 같아 저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8년 차 초등학교 교사 이모씨는 제주의 한 중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이 '익숙함'이라고 했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대전 초등학교 교사 등 민원에 시달리던 교사가 숨지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저 사람으로서의 권리, 인권이 지켜지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27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제주의 한 중학교 내부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교사 A씨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측 민원에 시달리던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 측은 학생의 가족이 A씨의 개인 휴대전화로 평일,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의성 민원 전화를 걸었다고 전했다. A씨는 20여년간 교직에 몸담은 '베테랑'이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육 당국은 민원을 교사 개인이 아닌 기관이 민원에 대응하고, 학교장 책임하에 '민원대응팀'을 구성하도록 했지만 현장 체감도는 낮다. 이 씨는 "민원대응팀이 어디에서 작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아직도 교실에 무작정 찾아와 책상에 가방을 던지거나, 다른 아이를 괴롭혀 연락했더니 '우리 아이의 잘못이 뭐냐'며 소리를 지르는 학부모들이 있다"고 말했다. 4년차 중학교 교사 송모씨는 "민원대응팀을 형식적으로 두는 것이지, 실제로 대응할 때는 관리자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관리자가 교사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느끼면 그냥 참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교사노조가 지난 8~16일 교사 40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6.76%(1902명)가 최근 1년 이내 악성 민원으로 인한 교육활동 침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악성 민원이 가장 많이 발생한 경로로 '교사 개인 휴대전화 및 온라인 소통앱'이 1위(84%)로 지목됐다. 숨진 A씨 또한 개인 휴대전화로 직접 쏟아지는 민원에 고통받은 바 있다. 6년 차 초등학교 교사 임모씨는 "소통앱을 쓰면 개인 번호를 공개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퇴근 후에도 학부모가 '연락 달라'고 하면 정말 큰 일이 있을까 봐 (민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전했다.
교원단체들은 민원 대응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등 악성 민원에 대처할 실효성 있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중등교사노조는 "교사 개인 연락처 노출을 금지하기 위한 시스템적 조치를 마련하고 학부모와의 공식 소통 채널을 일원화하라"고 요청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철저한 수사, 대책 마련, A교사의 순직 인정 등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26일 밤 10시 기준 4만1311명이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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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17개 교육청과 학교 민원 대응 체계를 점검할 방침이다. 또 '학부모 온라인 소통 시스템(가칭)'을 올해 하반기 중 개통할 예정이다. 기존의 '나이스 학부모서비스'와 연계해 학교 방문, 유선 상담 예약, 주요 안내사항 공지 등을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원 개인 연락처, SNS 등으로 학생 보호자가 불시에 연락하는 등 민원을 제기할 경우 교육활동이 침해될 가능성이 높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해 향후 시스템을 지속 보완할 것"이라고 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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