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추가경정예산)이 동결되면서 벌써 올해도 거의 몇 개월을 잃고 있습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보릿고개로 굉장한 피해를 보고 있어요. 올해가 가장 걱정됩니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런 말을 하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GPU 구매 등이 담긴 추경예산이 국회에서 공전하자 안타까운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유 장관은 "제가 돈이 많아서 이런 걸(GPU 구입) 할 수 있으면 너무 좋겠는데…"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고 "올해 남은 9개월을 헛되이 보내면 인공지능(AI) 기술 시장에선 3년을 허비하는 것과 같다"는 토로도 했다.
유 장관의 발언은 각국이 AI 시장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다. 요즘 GPU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AI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엔비디아 GPU는 지금 사도 언제 공급받을지 모를 정도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는 정쟁과 예산 탓에 GPU 발목이 잡혔다. 100m 육상경기로 치면 다른 선수들은 모두 전력 질주 중인데 한국 선수만 출발선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모양새다.
정부는 마음이 급하다. GPU를 적기에 확보하지 못하면 뒤처지는 건 3년이 아닌 30년일 수도 있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추경예산을 확보해야 내년까지 GPU 2만장이 들어가는 국가 AI 컴퓨팅 센터를 짓고 세계적인 거대언어모델(LLM) 개발도 할 수 있다. 대기업과 플랫폼사들이 AI 개발을 하고 있지만 해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와 손잡지 않으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만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GPU를 대거 사들이는 게 먼저다. 국내산 완전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K로봇이 공장과 집 안에서 사람 대신 일을 하는 미래상도 GPU가 있어야 실현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매년 성능을 높인 GPU 제품을 발표하며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1위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올핸 블랙웰 GPU를 주력으로 판매하고 내년부턴 '루빈'이라는 차세대 GPU를 양산한다. 이 제품들은 해외 빅테크에 대량 판매돼 매번 진화하는 AI 기술을 내놓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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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간 엔비디아를 이끌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조차 "앞으로 30일 안에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런데 정작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우리 국회는 추경 논의가 답보 상태다. 'AI 추경'만큼은 여야 정치 논쟁에서 벗어나 국가 경제와 미래를 걱정하는 자세로 대승적 합의를 해야 한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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