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첫 에세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친구와 떠난 핀란드 여행서 거둔 일상 행복 다뤄
삶을 “생딸기 과즙”처럼 솔직하게 담아
타인에게 미움받을 거란 오랜 불안감 고백
문학성 비판에 “신경 쓰이지만 의연하게 자신을 믿게 됐다”
흔히 소설가는 주인공을 의도적으로 극한 상황으로 몰아세운 다음 그 안에서 그가 느끼는 고통을 포착하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삶의 딜레마 앞에서 몸부림치는 주인공을 통해 독자는 위로와 공감을 얻기도 하고, 용기와 통찰을 길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소설이 마냥 무거운 것만도 아니다. 삶을 애(愛), 락(樂)의 관점으로 유쾌하게 즐겁게 담아내는 시선도 분명 존재한다. 2018년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문단에 올라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작가로 인정받은 소설가 장류진은 그런 존재다. 여느 사람과 같은, 혹은 다소 묵직한 삶의 무게를 견디고 살아가지만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4일 서울 합정동 밀리의서재에서 만난 작가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고, 때때로 몸을 들썩이며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에세이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오리지널스) 출간 후 첫 언론사 대면 인터뷰로 작가와 마주했다.
Q. 첫 에세이를 선보였다. 사실 이전에도 에세이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선뜻 수락을 망설였다고 들었다.
A.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인데 책으로 쓰면 고정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고정해 공개하는 데 부담감이 컸다.
Q. 에세이는 소설과 여러모로 달랐을 것 같은데 소감이 궁금하다.
A. 일단 쓰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여행 내용을 쓰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니 소설보다 어렵더라. 소설은 마음에 안 들면 인물과 배경을 바꿀 수 있지만 에세이는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각색을 한다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었다. 후회 많이 했다.(웃음)
Q. 책에서 내용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처음부터 세세하게 기록한 줄 알았는데, 여행 전에 에세이 집필을 생각한 건 아니었더라.
A. 사실 많은 부분이 각색됐다. 나중에 쓰려고 보니 ‘내가 그때 이렇게 이야기했던가’하는 의문이 들더라. 따옴표 속 모든 말이 다 의심되는 거다. 다만 어느 순간 그런 부담을 벗어던졌다. 소설 캐릭터로 생각하니 편하게 대사가 나왔다.
Q. 이번 에세이는 여행을 통해 관계를 조명하지만 무엇보다 장류진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 작품 같다. 얼마큼, 어느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A. 제 또래 이야기를 일인칭 소설로도 많이 썼고, 그게 저의 이야기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 저는 제 소설에 실제의 제가 딸기우유에 딸기가 들어 있는 만큼(함유량 0%)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세이는 다르다. 마치 생딸기 과즙이 들어간 라떼와 같다. 물론 일부 각색이 들어가지만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신 표현은 나름대로 기술을 발휘해서 썼다.
Q. 심리학에 깊이 파고들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누군가가 갑자기 나를 싫어하는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을 품었다고.
A. 어릴 때부터 마음속 불안감이 있었는데, 30대 중반에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이런 게 패턴이구나’라고 이론을 이해하게 되면서 상황을 납득할 수 있게 됐다.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이론을 탐구하는 걸 심리학에서 방어메커니즘이라고 한다더라. 책에서도 말했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앞에서는 호감을 표하지만 뒤에서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꽤 만났다. 사회생활의 무서움… 그래서 친구들에게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Q. 작품에 대한 비판. 그에 따른 상처도 드러냈다. 첫 작품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최근까지 이어져 온 고민 같다. 다행히도 나름의 해답을 찾은 것 같은데 그 과정을 좀 더 소개해 달라.
A. 저는 소설의 카테고리로 치면 순문학 안에서 쓰고 있다. 데뷔도 문학 출판사에서 문학상을 받으며 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교과서에도 실렸다. 하지만 제 소설이 순문학 카테고리 안에 있는 것에 화를 내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제가 잘못한 건 없지만 마치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괜히 안절부절못하게 되고... 다만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 이제는 문학이고 아니고를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비판은 신경이 쓰이지만 좋은 소리가 더 많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웃음) 저 자신을 의연하게 믿게 됐다.
Q. 문학계 선배들의 조언은 받아봤나.
A. 그렇진 않다. 하소연을 할 수 없는 게 남들이 보기에 작품이 너무 잘 돼서 상도 받고 칭찬도 받는데 징징거림으로 느껴질까 봐 걱정됐다.
Q. 장류진표 작품은 시종일관 밝고 유쾌한 느낌이다.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 성향이 자연스레 흘러나온 것인지.
A. 의도한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을 좋아한다. 삶의 딜레마를 다룬 이야기도 필요하지만 반대의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도 있지 않나. 평양냉면도 함흥냉면도 각자의 고유한 맛이 있듯 그게 제가 내는 맛인 것 같다.
Q.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인가.
A. 핀란드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 ‘이제 좋은 시절 다 끝났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는 비관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앞으로 이런 행복과 여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쟁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2008년 당시 미국발 금융위기로 가세도 기울었다. 취준생으로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Q. 작품에서 핀란드 사람들은 여름에 대한 기대감이 몹시 크다. 험한 겨울을 통과했기 때문이기도 할텐데, 작가의 인생에서 그런 계절이 찾아왔나.
A. 개인적으로 봄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이 내 인생의 봄이라고 생각한다. 젊음을 준다고 해도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웃음) 제가 원하는 가족을 꾸리고,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독자분들이 좋아해 주실 때 큰 행복감을 느낀다.
Q. 일상 루틴이 궁금하다.
A.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배가 고파질 때까지 글을 쓴다. 한 오후 4~5시쯤까지. 다소 이르지만 그때 저녁을 먹고 이후에는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고.
Q. 장류진 작품은 술술 잘 읽힌다는 평을 받는데, 집필 과정도 순조로운 편인가.
A. 잘 읽히는 만큼 쓰는 것도 한 번에 쓸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퇴고를 굉장히 많이 한다. 조사 하나 바꾸는 것도 고민을 많이 한다.
Q. 웃기고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유쾌한 재미를 선사하며 누리는 기쁨이 큰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해해도 되나.
A. 개인적으로 유머를 좋아한다. 독자에게 재미와 웃음을 드리고 싶다. 서사 자체가 희극이든 비극이든 독자가 마지막 책을 덮었을 때 ‘재밌다’고 느끼길 바란다.
Q. 단편 ‘탐페레 공항’은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고배를 마신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독자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 인정받고 있다. 인생의 여러 순간에서 이런 간극으로 힘들어하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전한다면.
지금 뜨는 뉴스
A. 자신이 가진 새로움의 미덕을 믿어주시길 바란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