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眞空에 빠진 의·정](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030608302656340_1741217425.jpg)
정부와 의사집단 간 힘겨루기의 양상은 평행선의 수준을 뛰어넘어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는 형국이다. 지금의 정권에서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할 것임을 양쪽 모두 인지한 채로 일단 시간을 흘려보내려는 인상이 갈수록 짙어진다. 내년 의대 정원을 증원 전인 3058명으로 동결할 수 있다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카드는 '증원'이라는 단어의 정 반대 이미지를 풍겨 대중의 눈을 일순간 번쩍 떠지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사태의 변곡점으로 작용하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내년 정원 문제는 정부와 의사집단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유일하고 결정적인 허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굳이 들여다보자면 의사집단은 앞선 증원분을 감안해 내년에는 정원을 감원하는 정도의 합의를 최소한의 전제로 깔고 다음 대화로 넘어가든 말든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이 부총리가 이런 구상을 전달했다는 의대 학장단은 의사집단과는 또 다른 이해관계에 얽히고설킨 탓에 크게 의미를 두기가 어렵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부총리가 이런 맥락을 몰랐을 리 없다. 사태의 복판에 서 있는 보건복지부와 사전에 교감하거나 협의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여러 정황은 또 무언가. 2025학년도 1학기 개강을 코앞에 둔 중대한 시점에 이처럼 어설픈, 단순 교육행정 차원의 기계적 접근을 했다는 건 사태 해결에 대한 의지가 생각보다 더 빈약하거나 어차피 본인의 재임 중 합의점을 모색하는 게 불가능함을 인정한 태도의 발로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의사집단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렇다 할 반응 자체를 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갈음하고 있다. 의협의 입장에서 헤아려보자면 영리한 대응인지도 모르겠다. 본지가 취재한 의사집단 내부의 목소리는 ▲의료계를 향한 공식적인 제안으로 보기 어렵다 ▲당초 의대증원 방침을 밝힌 것 자체가 신뢰를 파기한 것이라 더는 믿기가 어렵다 ▲24·25학번 의대생 교육 방안에 대한 설명이 먼저다 정도로 요약된다. 어떻게든 현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별로 문제될 건 없는 명분이다. 사직 전공의들을 포함한 의사집단 내부에도 전향적인 목소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괜한 공론화로 대오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계산은 의협 집행부 입장에서 어렵지 않다.
전공의들은 2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지난달 25일을 기준으로 전국 의대 10곳은 예과 1~4학년 중 단 한 명도 수강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일부 대학은 개강을 몇 주씩 미루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으나 의미는 없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의료개혁을 명분으로 준비한 각종 정책행보를 일단 진행하고 본다는 방침이다. 서로에게서 더 멀어지는 쪽으로 어긋나버린 트랙을 계속해서 내달리겠다는 셈이다. 겉으로는 결연해보이지만 뜯어보면 간편한 선택이다.
정부가 초고난도의 문제를 출제했는데 리더십이 상실됐으므로 부총리나 장관 선에서 움켜쥘 그립은 존재하지도 않게 됐고 의사집단은 자발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설 이유가 많지 않다. 이처럼 무책임한 진공(眞空)의 상태는 가깝게는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대통령이 파면된다면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 고약한 시간표야말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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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거의 유일한 희망은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추계위)'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추계위 또한 첩첩산중에 놓여있다는 것이며, 당장의 고비는 추계위를 복지부 장관 직속에 둠으로써 애초부터 독립성이 결여됐다는 논란이다. 여·야·의·정이 정치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치고받기라도 해서 일단 이 문제부터 풀어내지 못한다면 온 나라와 시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하릴없이 불어난다.
김효진 바이오중기벤처부장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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