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간 2주에 한번 꼴로 총 1173회 헌혈
'신생아 용혈성 질환' 예방 위한 항체 보유
호주에서 희귀 혈액 헌혈로 240만명의 목숨을 구한 남성이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3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한 요양원에서 제임스 해리슨이 지난달 17일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호주에서 '황금팔의 사나이'로 알려졌다. 희귀 혈액을 가진 그는 세계에서 가장 헌혈을 많이 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해리슨의 혈액에는 태아 및 신생아 용혈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희귀항체 Anti-D가 있다. 신생아 용혈성 질환은 산모의 적혈구와 태아의 적혈구가 맞지 않을 때 발생하며, 산모의 면역체계가 태아의 혈액 세포를 위협으로 인식해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Rh-인 여성이 Rh+인 아이를 뱄을 경우 출산 과정에서 아기의 적혈구가 산모의 혈액과 접촉해 산모가 Anti-D 항체를 갖게 될 수 있다. 이후 이 산모가 다시 임신해 Rh+인 아기를 갖게 되면 산모의 Anti-D가 태반을 넘어가 아기의 Rh+적혈구와 결합해 심한 황달이나 빈혈 등의 증상을 보이게 하는 '신생아 용혈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해리슨과 같은 Anti-D 항체가 있는 Rh- 헌혈자의 혈장으로 만든 'Rh 면역글로불린'을 Anti-D 항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Rh- 산모에게 투여하게 된다. 1960년대 중반 Anti-D 치료법이 개발되기 전에 신생아 용혈성 질환을 진단받은 아기 2명 가운데 1명이 사망할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었다.
앞서 해리슨은 14세 때 흉부 수술을 받던 도중 수혈을 받았던 것을 계기로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헌혈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18세부터 혈장 기부를 시작했고, 81세까지 평균 2주마다 한 번씩 헌혈을 이어와 총 1173차례 헌혈을 했다. 휴가 중에도 헌혈은 빼먹지 않았을 정도다. 이 같은 공로로 1999년 호주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다. 2005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혈장을 기증했다는 기록까지 세웠다. 이 기록은 무려 2022년까지 유지됐다.
해리슨의 딸 트레이시 멜로우십과 손자 2명도 Anti-D 치료법의 혜택을 받았다. 멜로우십은 "아버지가 많은 생명을 구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지금 뜨는 뉴스
한편 호주 적십사 혈액원은 호주에 해리슨과 같은 Anti-D 혈장 기증자가 200여명가량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매년 4만 5000여명의 산모와 아기를 살리고 있다.
구나리 기자 forsythia2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