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구조 바꾸는 '원 포인트' 개헌 힘 실려
‘불 꺼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해 12월14일 밤, 대통령실을 출입할 때 늘 청사 입구에 켜져 있던 ‘대통령실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나오는 전광판이 꺼져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가 눈물의 이유는 단연코 아니다. 민생과 경제는 외면한 채 반목과 대결만 무한 반복되는 한국 국회의 민낯, 그 끝에 ‘계엄’이라는 극단적 승부수를 던진 대통령의 파국적 선택에 대한 절망감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시대착오적 계엄 선포에 놀란 일각에선 곧바로 고질적인 한국 정치 병폐를 개선할 수 있는 개헌 논의에 불을 지폈지만, 조기 대선을 의식한 더불어민주당의 소극적 자세에 탄력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최근 그런 분위기에 변화가 감지된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그간 뒷짐 지고 있던 민주당에서 비명계를 중심으로 개헌 카드를 적극적으로 꺼내 들었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중심제 권력 구조를 바꾸는 ‘원 포인트’ 개혁에 힘이 실린다. 이날 국회에서 개헌 토론회를 여는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 자리에 꼭 초대하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재명 대표님입니다"라며 이 대표의 개헌 논의 참여를 촉구했다.
지금 개헌 논의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학계 전문가 시선은 엇갈린다. 개헌의 필요성에는 상당수가 공감하지만 개헌이 실제 이뤄질지, 현실성에 물음표를 제기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조기 대선이 열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개헌 논의는 과거 정치권 단골 메뉴처럼 잠시 불같이 논의됐다가 국민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회의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계를 중심으로 의회중심제(내각제)와 다당제 연착륙을 위한 정치 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된다. 하지만 개헌과 관련해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만큼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내각제를 추진하려면 국민들이 제도를 이해하고 숙고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논의해야 한다. 개헌 취지에 맞는 선거구제 개편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섣부른 개헌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헌법학자는 "행사를 위한 행사, 개헌 논의를 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개헌 논의가 돼서는 안 된다"면서 "일부 대선주자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셈법에 맞는 개헌 논의를 내놓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금처럼 거대 양당이 독식하는 국회 구조 자체를 변화하지 않는다면 개헌 역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개헌은 제왕적이고 독단적 국정 운영 위험이 있는 현행 대통령제 폐해나 이른바 포퓰리즘 정치의 문제점을 한 번에 타개할 해법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치열한 논의를 진행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현 정치 상황을 직시하고, 미래 발전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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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새해가 밝았지만 새해가 새해 같지 않은 것은 계엄 사태와 그 후폭풍이 한국 사회를 잠식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개헌 논의가 미래 한국 사회를 위한 한 줌의 씨앗이 될 수 있기를,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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