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내리면 대출 쏠린다"
당국 가계부채 관리 기조 속
시중은행 13일 '일괄 시행' 가닥
관련 시스템 구축 작업 절차 진행
은행들이 중도상환수수료율 선제 인하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달 13일부터 제도 개편으로 은행권 가계대출의 중도상환수수료가 절반가량 낮아질 예정인 가운데 당국이 준비된 곳의 조기 시행을 독려하고 있지만 금융권은 아직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3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개편된 수수료율 적용을 일괄 13일에 시행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하루 이틀이라도 빨리할 수 있는 곳은 점검을 해보겠지만 아직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30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은행들의 대출 중도상환수수료 제도개선 시뮬레이션 결과 현재보다 절반 정도 수수료가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며 "전체적으로는 내년 1월부터 시행하고, 준비가 빨리 되는 일부 은행의 경우 그 이전이라도 시행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국정감사 때도 같은 의지를 내비쳤었다. 이는 '중도상환수수료 부과체계 개선을 위한 금융소비자보호 감독규정 개정안'에 따른 것으로, 수수료 산정 시 자금 운용 차질에 따른 기회비용과 대출 관련 행정·모집 비용 등 실비용 외 다른 비용 부과가 금지된다. 은행들은 개편된 수수료율을 금요일인 10일에 은행연합회에 공시하고, 그다음 주인 월요일(13일)부터 적용된다.
주요 시중은행은 지난해 연말을 앞두고 수수료 한시 면제를 시행했다. 신한·우리·IBK기업은행은 모든 가계대출에 대한(기금대출 등은 제외) 면제 정책을 11월 한 달 시행하다 12월까지 연장했으며 NH농협은행도 특정 등급(BS 5등급) 이하 저신용 고객의 가계 여신에 대해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한시적인 면제에 들어갔다. 이는 대외적으로는 금융권의 '상생 경영' 슬로건으로 표방됐지만, 실상은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압박이 추진 동력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다른 은행 대비 가계부채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했던 KB국민은행은 9월 한 달간만 가계 여신 중 주택담보대출만 일시적으로 면제했고, 하나은행은 별도 조치를 하지 않았다.
새해에 들어서며 은행 가계대출 관리총량이 리셋되는 동시에 중도상환수수료율(농협은행 제외)도 기존대로 돌아왔다. 은행들은 새로 개편된 수수료율을 조기 공시·적용하는 것을 꺼리는 모양새다. 먼저 시행하는 곳으로 대출 수요가 쏠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진 영향에 '풍선효과'가 나타나며 지난해 11월에는 2금융권 가계대출이 40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한 바 있다. 당국의 가계대출 증가세 관리 기조가 여전한 가운데 작년 대출 목표치를 넘긴 은행을 대상으로 새해 대출 물량을 줄이는 '페널티'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게다가 금리 인하기에 접어들며 장기적으로 '머니무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도상환수수료는 차주들의 대출 선택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앞서 당국은 수수료 부과체계 개편을 앞두고 은행뿐만 아니라 저축은행, 상호금융, 보험사, 여신전문금융사 등 전 업권의 시뮬레이션 산출 결과를 검토했다. 겉으로는 "준비된 은행부터 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은행들에 두 차례 이상 시뮬레이션 산출 결과를 요구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은행 간 수수료율 차이가 크면 당국과 은행 모두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한 은행의 경우 다른 은행의 산출 결과와 수십bp(1bp=0.01%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 당국 관계자는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초반에는 과거 데이터 적용 기간, 금리 유형 등에 혼선이 있었지만, 추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런 차이들을 줄여나갔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관련 시스템 구축 작업을 하며 일괄 시행일까지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편된 수수료율 수치만 나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영업점 고객을 위한 안내장·설명서·약정서를 바꾸고 비대면대출·집단대출 관련 제반 사항도 마련하는 등 수반되는 절차가 많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수료 인하를 위한 시스템 정비를 진행해왔다"며 "기술적으로 미리 시행이 가능하게 되더라도,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먼저 공시할 유인이 없다"고 설명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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