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 책임 끝까지 인정안해
"새떼 충돌·기체 결함 주장으로 회피"
러시아군 방공망의 오인사격에 격추된 것으로 알려진 아제르바이잔 여객기 추락사고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양국의 외교적인 마찰이 더욱 커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해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러시아군이 책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분쟁의 불씨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아제르바이잔군의 오인사격으로 러시아군 헬기가 추락한 사고 발생시 즉각 책임을 인정한 아제르바이잔 정부 대응모습과 현재 러시아군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알리예프 대통령 "러 즉각 사과하고 죄를 인정해야"
29일(현지시각) 알리예프 대통령은 수도 바쿠 인근의 헤이다르 알리예프 국제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여객기가 러시아에 의해 격추됐다고 완전하고 명확히 말할 수 있다"며 "러시아가 처음 3일동안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며 새떼와의 충돌, 기체결함 등 터무니없는 주장만 일삼아왔다"고 비난했다.
이어 "러시아측에 3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며 "첫째, 아제르바이잔에 사과해야 한다. 둘째, 죄를 인정해야 한다. 셋째, 죄를 지은 관련자를 처벌해서 형사 책임을 묻고 아제르바이잔 국가, 부상당한 승객 및 승무원에게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푸틴 대통령이 전화통화로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러시아가 아직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추락한 여객기는 아제르바이잔 항공 J28243편으로 엠브라에르-190 기종이다. 지난 25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출발해 러시아 그로즈니로 향하던 중 기체에 이상이 생겨 항로를 변경, 카자흐스탄 서부 악타우에서 착륙을 시도하다가 추락했다. 여객기에는 총 67명이 탑승했으며, 이 중 38명이 사망했다.
러시아 정부는 사고 직후 해당 지역의 악천후와 기체결함, 새떼와의 충돌 등을 주장하며 발뺌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해당 항공기가 러시아군 방공망의 오인사격으로 격추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여객기가 러시아 그로즈니로 향하던 당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 무인기(드론)와 교전 중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해당 여객기를 드론으로 잘못 인식해 오인사격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군의 오인사격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푸틴 대통령과 알리예프 대통령간 통화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이 알리예프 대통령과 다시 전화 통화를 했지만, 대화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20년 러 군용헬기 오인격추 때와 대비…아제르바이잔은 즉각 사과
아제르바이잔이 이번 오인사격 사건에 더욱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4년 전 아제르바이잔군의 오인사격으로 러시아군 헬기가 격추됐을 당시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즉각 책임을 인정, 사죄하고 배상안을 제시한 것과 달리 러시아 정부가 책임을 계속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20년 11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접경지대에서 러시아군 헬기가 아제르바이잔군의 오인사격으로 격추돼 조종사 2명이 사망하고 1명은 부상을 입었다. 당시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사건발생 직후 외교부 성명을 통해 자국군의 오인사격임을 인정하고 배상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이웃나라 아르메니아와 전쟁 중인 상황에서 러시아의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불러올 수 있는 오인사격 문제 해결을 위해 책임을 모두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고, 러시아도 크게 문제삼지 않으면서 양국 관계가 일부 호전되기도 했다고 NYT는 전했다.
한편 러시아와 튀르키예, 이란 등과 인접한 아제르바이잔은 이웃나라 아르메니아와 1980년대부터 국경분쟁을 계속 이어오고 있으며,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와의 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아르메니아에 간접적인 군사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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