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만조니, 카진스키 저서에 호평 남겨
'유나바머'로 악명 떨친 美 반기술 테러범
미국 최대 민영 건강보험사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최고경영자(CEO)를 살해한 루이지 만조니(26)가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그의 신원 정보가 알려진 뒤 인터넷상에선 만조니의 '독서 기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약 30년 전 체포된 미국의 반기술혁명주의자이자 테러리스트인 일명 '유나바머',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저서에 찬사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 경찰이 브라이언 톰슨 유나이티드 헬스케어 CEO 살해범인 만조니를 9일(현지시간) 한 맥도널드 매장에서 체포했다고 밝힌 뒤, 현지 누리꾼들은 만조니가 온라인상에 남긴 수많은 기록을 파헤치고 있다.
만조니는 미국 명문대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수재이며, 평소 컴퓨터 과학과 수학에 지대한 관심을 지녔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미국의 도서 리뷰 사이트 '굿리드(Goodreads)'에 200건 넘는 서평을 남길 만큼 독서광이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엔 남 부러운 것 없는 엘리트의 삶을 구가하는 듯한 만조니였지만, 그는 최근 들어 '위험한 사상'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월 굿리드에 '산업 사회와 그 미래'라는 책에 대한 호평을 남겼다. 이 책은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무차별 폭탄 테러를 자행하며 미국 사회를 공포에 떨게 한 연쇄살인마 겸 테러리스트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저서다.
사회 적응 실패한 수학 천재, 최악의 테러리스트로 돌변
카진스키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미시간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수학자로, 1967년 UC 버클리 대학교 조교수로 임명된 수학 천재였다. 그러나 주변 인물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2년 만에 조교수직을 사임하고, 이후로는 고무 공장에서 일했으나 그곳에서도 다른 노동자들과 섞이지 못해 해고됐다.
이후 카진스키는 강가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 야인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인류의 파멸을 멈추려면 산업 문명을 끝내고 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그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폭발물을 소포에 담아 기업가, 과학자 등 산업 발전에 책임이 있는 인물들에 배송하며 '무차별 테러'를 시작했고, 경찰의 첨예한 수사망을 여유롭게 빠져나가는 모습까지 보여줘 전미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유나바머'라는 별명도 이때 얻었다.
결국 그는 1996년 4월 동생의 신고로 체포돼 1998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카진스키는 지난해 감옥 안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집필 활동에 집중하며 자기 사상을 세간에 널리 퍼뜨리려 했는데, 그의 생각을 담은 책 중 하나가 바로 1995년 출간된 '산업 사회와 그 미래'다. 이 책에서 카진스키는 산업혁명을 "인류의 재앙"으로 규정하며 현대 사회를 전복하려면 폭탄 테러 등 극단적인 폭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명료한 수학적 천재성…테러 아닌 혁명" 카진스키 심취한 듯
만조니는 지난 1월 '산업 사회와 그 미래'에 대해 "명료한 수학적 천재성으로 쓴 책"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는 카진스키의 행각에 대해서는 "수감될 만하다"고 시인하면서도 "(카진스키의) 현대 사회에 대한 예측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 만조니는 최근 인터넷에서 흥미로운 글을 봤다며, "모든 종류의 의사소통이 실패했을 때는 폭력만이 유일한 생존법"이라면서 "그(카진스키)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의 관점을 봐야 한다. 이건 테러리즘이 아니라 전쟁이자 혁명이었다"고 주장한 글귀를 공유하기도 했다.
일부 현지 누리꾼들은 만조니가 유나바머의 책에 심취하면서 범죄에 이르게 된 게 아니냐는 추측을 제기하고 있다. 유나바머가 기업가, 과학자만 골라 폭탄 소포를 보낸 것을 본떠 거대 민간 기업의 경영인을 살해한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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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니의 범죄 행각은 이미 미국 사회에 거대한 파문을 던진 상태다. 특히 의료보험사가 과도한 이득을 취하는 일에 반감을 품은 일부 시민들이 만조니를 영웅 취급하고 나서면서 갈등은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실제 미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만조니는 건보사의 이익 추구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도 휴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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