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업무보고 한참 분주할때
올해는 일정조차 잡지 못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된 이후 첫 평일인 9일 오전.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주요 경제부처가 모여있는 세종 관가엔 빈자리가 가득했다. 이날 주요 경제부처 장·차관과 실·국장 간부들은 계엄 충격파 뒷수습에 세종이 아닌 서울청사로 출근했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가 있은 4일 이후 세종시 관가엔 레임덕(권력 누수)을 넘어선 데드덕(권력 공백) 국면에 상사 없는 날, 무두절이 이어지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각 부처는 내년 할 일을 계획하고 연초에 있을 대통령 업무보고 준비에 분주하지만, 올해는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모 경제부처의 기조실장은 "신년 업무보고 얘기는 아직 시작도 못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종 보고라인인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경제수석 등 용산 핵심 참모들이 사의를 표명한 이후 일정 공지조차 없는 '기능 마비'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당·정과 용산으로 이어지는 소통 라인도 끊겼다. 계엄 사태 뒷수습에 서울청사로 출근하고 있는 장·차관은 물론이고 실·국장 간부들의 지시는 사라졌고, 대통령실과 당의 주문조차 없는 상태에서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고 있다.
외치는 물론 내치에서도 동력이 상실되면서 업무 추동력은 떨어지고 있다. 당장 내달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앞으로 4년간 펼쳐질 통상정책의 새 판을 짜야 할 시기지만 리더십 공백에 안갯속이다. 한 과장급 공무원은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행정수반인 대통령의 가이드를 받아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며 "지휘 라인의 최상단에 있는 대통령의 권위와 대한민국의 국격이 동시에 무너진 상황에서 평소처럼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공무원노조)은 '윤석열 탄핵'과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하며 연가투쟁에 돌입했다. 9일 세종시의 대표적인 중심 상권인 도담동 일대 촛불집회에서 '윤석열을 탄핵하라'라는 구호가 터져 나오면서 공무원들의 마음의 동요는 더 커지고 있다.
![[관가in]"뭘 해야 할지..." 계엄쇼크·데드덕에 무기력해진 관가](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4120909462642960_1733705187.jpg)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들은 조직 추스르기에 나섰지만, 영이 서지 않는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이 "동요하지 말고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기강 잡기에 나섰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공직자는 상황과 관계없이 맡은 바 업무를 충실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어려운 때일수록 기획재정부가 중심을 잡아달라"고 다독였지만, 공염불일 뿐이다. 한 고위 공무원은 "경제부처 주요 장관들이 비상계엄을 사전 심의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인물로 언제 수사 대상에 오를지 모르는 마당"이라며 "당장 내일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관이라고 일이 손에 잡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지금 뜨는 뉴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정치 리스크에 출렁이는 금융·외환 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당분간 거시경제금융현안 회의를 매일 열겠다고 했다. 일부 부처나 부서는 주말에도 회의를 소집하고 있지만, 장관들조차 의욕을 잃기는 다르지 않다. 계엄 충격파 뒷수습에 평일 같은 주말을 보낸 뒤 출근한 각 부처 장·차관과 실·국장 등 고위급 공무원들은 이날도 반나절 회의만 이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긴급 취소됐던 경제관계장관회의는 하루 만에 다시 열리며 일선으로 복귀하는 듯 보였지만, 이미 벌여놓은 일들을 정리하는 수준이다. 한 경제부처 사무관은 "윤 대통령이 촉발한 비상계엄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며 공직사회도 큰 혼란 속에 있다"며 "데드덕 국면에 허탈감과 공허함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전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