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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강제실종' 김씨 일가 마음대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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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정의워킹그룹, 北 강제실종 범죄 추적
대부분 보위부 개입…'김정은 가해 책임' 시사
중·러, 묵인 내지는 방조로 사실상 범죄 협조

북한에서 탈북을 시도하면 체포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종교 활동을 하다 연행되거나 '불순한 발언'으로 잡혀가는 일도 흔하다. 심지어는 이유도 모른 채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북한 내부에서 자행되는 강제실종 가운데 상당수는 국가보위성(보위부)에 의해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범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북한 내부에서 자행되는 '강제실종' 첫 추적
'북한 강제실종' 김씨 일가 마음대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철조망 너머로 북한 인공기가 휘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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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존재할 수 없는 존재 : 북한 강제실종 범죄 조사' 보고서를 31일 공개했다. TJWG는 2021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62명을 심층면담했고, 강제실종 사건 66건(실종자 113명)을 피해 단계별로 분석했다. 접근이 제한된 북한 내부에서 벌어지는 강제실종 범죄의 과정과 가해 기관을 추적한 연구는 처음이다.


역사적으로 전체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들은 '복종'을 강제하는 수단으로 전 사회에 걸친 강제실종을 일삼았다. 정적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 강제실종의 다음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는 것은 대다수 독재자의 통치 방법이었다. 나치 히틀러의 '밤과 안개' 명령이 대표적이다.


TJWG의 연구는 이 같은 강제실종 문제가 더는 국제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여전히 당국 차원의 범죄를 자행하는 북한을 겨냥한다.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공개처형·강제실종 등이 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질타했다.


'범죄'도 세습하나…대부분 국가보위성 개입
'북한 강제실종' 김씨 일가 마음대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북한 국가보위성에 의해 강제실종에 이르는 과정. [이미지출처=전환기정의워킹그룹]
'북한 강제실종' 김씨 일가 마음대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강제실종 범죄 구성요소. [이미지출처=전환기정의워킹그룹]

조사 대상 62명은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됐다. 진술을 철회한 1명을 제외하면 김정일 시기에 탈북한 사례가 25명,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경우가 36명으로 나타났다.


실종자 113명 중 35명(31.0%)은 김정은 집권 이후 사라졌다. 강제실종 범죄가 과거보다 늘었는지 줄었는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일정 부분 검증된 셈이다.


강제실종 피해자를 최초로 체포·연행한 '가해 기관'으로는 국가보위성(보위부), 국경경비대, 인민군 보위국, 사회안전성, 비사회주의검열그루빠 등이 지목됐다. 실종자 113명 중 절반이 넘는 62명(54.9%)은 국가보위성에 의해 사라졌다. 체포·연행 이후 피해자에 대한 가해 주체를 추적한 결과까지 합산하면 국가보위성이 범죄에 개입한 사례는 무려 92명(81.4%)까지 늘어났다.


국가보위성은 북한 국무위원장 직속 정보기관이자, 비밀경찰기관이다. 내각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북한판 국가정보원'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오로지 북한의 '수령' 위치에 있는 인물만 지휘할 수 있는 기관이 강제실종에 개입했다는 것은 김씨 일가의 가해 책임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또 23명(20.4%)은 중국·러시아 등 해외에서 체포된 뒤 실종으로 이어졌다. 중국과 러시아의 책임을 가리키는 결과다. 면담 과정에서 실종자의 최초 연행 기관으로 중국 공안부가 지목된 사례도 나왔다. 묵인 내지는 방조 형태로 강제실종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어린 아이도 예외는 없다…10세 미만도 실종
'북한 강제실종' 김씨 일가 마음대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2018년 9월 한복을 차려입은 북한 여성들이 평양 외곽에서 열린 ‘조선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국제 행군’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지출처=AFP·Getty image]

실종자의 성별에서도 특이점이 나타났다. 남성 66명(58.4%)·여성 47명(41.6%)으로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중남미 등 해외 강제실종 통계에서 여성이 6~30% 정도의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수치다. 여성의 비중이 유독 크게 나타난 이유로는 ▲중국으로 탈북한 뒤 체포·송환된 사례 ▲가족 구성원 체포 당시 여성이 동반 수감되는 연좌제 ▲명시적인 기준 없이 무분별한 강제실종(남녀 차이가 적은 이유) 등이 꼽혔다.


연령대로 보면 피해자는 대부분 20~30대 청년층에 집중됐다. 113명 중 44명(38.9%)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지표는 '아동'도 예외는 없다는 점이다. 10세 미만(0~9세)에도 강제실종 범죄를 당한 사례가 13명(11.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제실종 범죄를 이번 연구에 한정하면, 북한에서 사라진 사람 10명 중 1명은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라는 이야기다.


실종 이유로는 연좌제(5명), 탈북 시도(4명), 탈북 준비(3명), 원인불명(1명) 순으로 조사됐다. 가족이 탈북하려다 적발된 과정에서 아동까지 예외 없이 잡혀간 것이다. 보고서는 "아동 강제실종은 국제사회의 공개적 질의, 명시적 비판, 강력한 행동이 특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범죄 양산' 조건
'북한 강제실종' 김씨 일가 마음대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강제실종 이유. [이미지출처=전환기정의워킹그룹]

TJWG는 강제실종 범죄의 특성 가운데 '계속성'에 주목했다. 체포·납치 시점부터 당국이 구금을 인정하고 실종자의 생사·소재에 관한 정보를 밝히기 전까지 피해가 계속된다는 지적이다. 실종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당국이 사실을 은폐하면 강제실종 범죄는 계속 유지된다.


아울러 체포 이유와 피의사실에 대한 고지를 받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독립된 사법부의 통제 등 자유 박탈에 필요한 '적법절차' 전반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도 꼬집었다. 강제실종 범죄가 쉽게, 더 많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북한 내부에서 사라진 90명(79.6%) 가운데 체포·연행에 앞서 가해 기관이 영장을 제시하거나 이유를 밝힌 사례는 전무했다.


예컨대 2016년 양강도 혜산시에선 딸을 중국으로 탈북시킨 여성이 실종됐다. 당시 그의 집을 찾아온 보위원 서너명은 '물어볼 게 있다'며 피해자를 데리고 나섰고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 2016년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선 패싸움에 연루된 남성이 임의동행으로 연행된 뒤 사라졌다.


중국산 휴대전화 사용으로 조사를 받아본 진술인(2019 탈북·양강도 혜산시)은 임의동행 이후 펼쳐지는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어떤 이유인지 설명해주지 않고 데려간다"며 "이후 '중국산 핸드폰 내놔라' 해서 없다고 하면 패고픈 대로 패고, 때리고 싶은대로 때린다"고 했다.


"묵인하고 방조한 중·러 책임, 초국가적 범죄"
'북한 강제실종' 김씨 일가 마음대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2012년 중국 내 일본영사관에 진입을 시도하다 공안에 의해 끌려나오는 한 탈북 여성의 모습.

연구에 참여한 이승주 프로파일러는 이번 보고서에서 체포·연행 단계와 강제실종 단계로 나눠 어떤 기관들이 지목됐는지 제시한 이유에 대해 "북한의 현직 수반인 김정은과 고위 관료들에 대한 책임 추궁과 표적제재 시 강제실종 범죄 책임도 주목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제실종 이유들을 짚어보면 김정은 일가의 권력 존속과 체제 유지라는 목적 아래 강제실종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데, 이는 가장 큰 책임이 김정은에게 있다는 뜻"이라며 "중요 가해기관 국가보위성의 인적 구조와 고위 간부들의 신상 조사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강정현 프로젝트디렉터는 "그간 북한 정권의 강제실종 범죄는 한국인·일본인 등 외국인 납치 사건 위주로 조명됐고, 당국이 주민에게 저지른 범죄는 덜 조명된 불균형이 있었다"며 연구 배경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특히 북한 내 강제실종 사건의 상당수에 중국과 러시아의 책임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자 했다"며 "국제사회는 탈북 또는 제3국 망명 희망자를 각국 기관이 체포·송환하거나, 북한 기관원이 벌이는 납치 활동을 묵인·방조한 데서 비롯되는 강제실종을 초국가적 범죄(transnational crime)로 규정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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