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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당세대]①김정은 위협하는 '북한판 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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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제 붕괴 속에 '자생적 자본주의' 경험
개인주의 두드러져…충성보다 '자유' 갈망
前 국정원장 "고도의 문화 심리전 펼쳐야"

편집자주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일 방벽을 쌓아 올리면서 북한을 자기만의 요새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더 강력한 균열은 이미 내부에서 시작됐다. 배급제가 무너진 시절 나고 자란 청년 세대에게 '수령님'이 인민들을 지켜줄 거란 믿음 따윈 없다. 당을 위해 희생하기보다 '나'를 위해 살겠다는 이 청년들은 충성 대신 자유를 갈망한다. 70년 넘게 굳어진 김씨 일가의 독재를 뒤흔들 변화의 잠재력, 장마당세대에 대해 알아본다.

"충성은 무슨, 수령이라고 나한테 강냉이죽 한 그릇 먹여준 적 없는데요."


30대 탈북민 김은정씨(가명)는 '수령'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런 답을 내놨다. 과거 북한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반항적 사고방식, 당보다 내가 중요한 개인주의. 그는 '장마당세대'다.


[장마당세대]①김정은 위협하는 '북한판 M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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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씨는 북한에서 보낸 10대를 회상하며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는 기업소에 다녔지만 가족 몫만큼 배급받지 못했다. 생계는 장마당에 나가는 어머니가 떠안았다. 은정씨는 "자고 일어나면 동네에서 또래 여자아이들이 하나둘 사라졌다"며 "중국으로 팔려 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기선 어떻게든 죽겠다 싶었다"며 "본 적도 없는 수령이 날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은정씨는 결국 반대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탈북에 나섰다.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2011년 끝자락, 얼어붙은 두만강 위로 발을 내디딘 그의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김정은의 골칫덩이, 변화 이끌 장마당세대
[장마당세대]①김정은 위협하는 '북한판 MZ'

70년 넘게 외부와 단절됐던 북한에서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나타나고 있다. 남한 드라마를 유포하면 처형하는 김정은 시대 악법들은 역설적으로 이 젊은 세대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독재를 무너뜨릴 잠재력을 가진 북한판 MZ(밀레니얼+Z세대) '장마당세대'다.


북한은 청년 시기에 겪은 시대적 배경으로 '혁명세대'를 규정한다. 1세대는 김일성 주석과 빨치산 투쟁에 나선 항일빨치산세대, 2세대는 6·25전쟁과 전후 복구를 경험한 천리마세대다. 3세대는 1970년대 3대 혁명소조운동을 주도했고, 4세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김정은 시대가 열리면서 사회에 진출한 5세대, 지금의 청년 세대는 따로 규정하는 단어가 없다. 외부에선 이 사람들을 '장마당세대'라고 부른다. 배급제가 무너진 '고난의 행군' 시기에 나고 자랐다. 연령을 고려하면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부터, 현재 20~40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1990년 중반까지, Z세대는 1990년 중반에서 2005년 출생자를 의미하니 대체로 그 범주가 일치한다. 장마당세대를 두고 '북한판 MZ'라고 부르는 이유다.


인구 구성비를 보면 북한에서 이 세대가 가진 영향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정확한 통계치가 없는 북한은 유엔(UN) 인구 추계치, 남한은 통계청 자료를 기반으로 세대별 비율을 비교했다. 장마당세대가 태어나기 시작한 1980년 남한의 10~40대 비율은 65.4%, 북한은 66.2%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해 남한은 50.1%까지 떨어진 반면, 북한은 장마당세대에 해당하는 10~40대가 57.9%로 높았다. 20·30세대로 좁혀도 남한은 25.9%, 북한은 30.8%로 차이가 벌어진다.


장마당세대 비중이 크다는 건 이들이 사회 전반의 인식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앞으로도 변화의 주축이 될 이들에게 대북정책과 심리전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배급제 붕괴로 자본주의 경험…"당보다 나"
[장마당세대]①김정은 위협하는 '북한판 MZ' 2019년 북한 양강도 혜산시의 한 장마당에서 주민들이 모여 장사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강동완 동아대 교수]

자생적 자본주의를 경험하며 자란 장마당세대는 '개인주의' 성향이 두드러진다. 북한 주민들의 관념을 지배해온 주체사상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변화의 가능성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오랜 시간 김씨 일가의 독재를 가능케 한 기반은 '배급제'였다. 당과 수령의 애민 정신을 선전하는 수단이었다. 의식주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명분, 현실적으로는 말을 듣지 않으면 굶기는 잔혹한 통제 도구였다. 장마당세대는 이런 배급제의 붕괴와 함께 등장했다.


식량난으로 경제 분야에 대한 당국의 통제가 약화됐고, 국경 무역과 장마당이 급속도로 확대됐다. 식량과 생필품은 물론, 부동산 거래까지 이뤄졌다. 주민들의 '비공식 소득'이 발생한 것이다. 물건만 사고파는 게 아니었다. '정보'가 유통되고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기도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자본주의에선 노력한 만큼 성취를 얻고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데, 이것이 개인주의로 연결된다는 게 핵심"이라고 짚었다. 자본주의 경험으로 개인주의가 발현될수록 국가에 대한 의존도와 충성심이 낮아진다는 이야기다. 산업혁명으로 왕권이 약화되고 민주주의가 시작된 유럽, 중산층의 등장과 맞물린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도 같은 맥락이다.


박 교수는 "경제적 안정을 얻으면 정치적 권리를 이야기하게 된다"며 "당장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장마당세대는 김정은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도의 심리전…북한군 파병, 위험한 도박"
[장마당세대]①김정은 위협하는 '북한판 MZ'

장마당세대가 당장 체제 붕괴를 가져오리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한 오류다. 여러 조사에서 핵무기 보유 등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의견은 외부 정보 접촉 경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잠재돼 있는 변화의 동력을 발현시킬 수 있도록 고도의 심리전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김규현 전 국가정보원장은 최근 퇴임 이후 첫 강연에서 "북한에는 당이 두 개가 있는데, 노동당과 장마당"이라며 "이 싸움에서 장마당세대의 특성을 고려한 문화 심리전을 펼쳐야 한다"고 짚었다. 당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란 청년들의 '잠재적 저항 에너지'를 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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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측면에서 최근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중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대규모 파병은 김정은에게 완전한 도박"이라며 "전장과 죽음에 대한 공포, 외부 정보 접촉이 맞물리면 젊은 군인들이 살아 돌아가도 김정은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 싣는 순서
①'북한판 MZ' 변화의 중심에 선 사람들
②'취약한 체제' 이러다 남북 인종 달라진다
③탈북한 뒤 '국군' 꿈꿨다는 보위부 장교
④턱수염과 찢어진 청바지, 北 소녀 흔들다
⑤전문가 제언 : 장마당세대가 가진 잠재력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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