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매수 성패 주주들이 선택
주주 신뢰가 경영권 방어수단
영풍그룹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로 증권 시장이 뜨겁다.
영풍과 MBK는 고려아연 주식 지분을 50% 이상 확보해 경영권을 획득하려 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 주에 66만 원으로 주식을 공개매수하겠다고 했다가 주가가 뛰자, 매수 가격을 75만 원으로 올렸다. 고려아연은 '약탈적 기업사냥'이라며 매국 자본이 기간산업을 중국에 넘기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MBK는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개선을 위해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으며 적대적 인수합병이란 잘못된 주장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유든 경영권 분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은 좋지 않다. 국내에서 인수합병은 아직 ‘기업 약탈’이란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기업이 신사업을 발굴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수합병은 순기능을 한다.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공개매수를 통한 경영권 확보 전략은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흔한 투자 방식이고 많은 기업에 훌륭한 성장의 수단이기도 하다.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과정 자체를 부정적으로 봐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
사실 일반주주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더 나은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기업이 실력이 부족한 지배주주 때문에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는 지배주주를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대주주가 아니라 기업이고 누가 경영권을 가지는 게 좋은지 결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그건 누가 더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영풍과 MBK가 밝힌 공개매수의 이유에는 고려아연 경영을 맡고 있는 2대 주주 최씨 가문의 3세인 최윤범 회장의 배임 이슈가 있다. 최 회장이 이사회도 안 거치고 중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사모펀드에 5600억 원을 투자했고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미국 회사에도 5800억 원을 투자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최 회장의 사익 추구가 의심되는데도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등 지배구조 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MBK의 설명처럼 적대적 인수합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인수합병 대상 기업과의 협의 없이 추진되는 공개매수는 원칙적으로 모두 적대적 인수합병이다.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명분이야 어떻든 사모펀드나 행동주의 펀드의 목표는 사회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수익이라는 점도 맞다. MBK가 시가보다 높은 공개매수 가격을 제시한 건 수익이 가능하다고 계산했기 때문이겠다.
그러나 MBK 같은 사모펀드의 순기능이라는 게 바로 문제가 있는 기업을 사서 자본투입과 경영 개선 작업으로 가치를 끌어올린 뒤 이를 매각해 산업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일이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곳이 역시 법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활동을 하는 데 약탈이나 매국에 비유하는 것도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기업이든 공개매수는 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업의 주주들이 가진 권리를 재평가받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현재 국내에는 1000개가 넘는 사모펀드가 있고, 투자 규모는 130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물론 적절한 감독과 규제는 필요하다. 특히 국가안보 관련 기업에 대한 M&A 규제는 엄격히 할 필요가 있고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방지를 위한 법적 장치도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경영권은 주주들에 의해 인정받아야 한다. 공개매수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도 결국 주주들의 선택이다. 주식회사의 경영권은 물려받는 게 아니라 시장에서 주주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제한된 권리다. 실적과 성과를 통해 주주들의 신뢰를 얻는 것보다 더 좋은 경영권 방어 수단은 없다.
김상철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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