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폐자전거 매년 1만5000여대
자활 근로자들이 수리해 중고 시장으로
"주로 타이어 펑크난 것들이 많지. 기어 변속기 고장 난 건 못 쓴다고 봐야 해."
서울 구로구 자전거 수리점인 '우리 동네 자전거포'에서 일하는 유태훈씨(58)가 새로 들어온 폐자전거를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오랜 시간 거리를 떠돌다 이곳으로 온 자전거는 손잡이와 몸통 부분에 하얀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유씨는 손으로 먼지를 덜어내며 "외관상 페달과 브레이크가 멀쩡한 건 다시 쓸 수 있는데, 기어 변속기가 고장 난 건 고치기 힘들다"며 "하루에 10대 정도 들어오면 그중 잘 골라 3대 정도는 새 자전거처럼 탈바꿈해 거리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초수급권자들에게 '새 삶'
우리 동네 자전거포에는 매일 10여대 이상의 주인 잃은 자전거가 모인다. 지자체가 폐자전거를 수리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중고 시장으로 보내거나 노인 복지기관·아동 보육 기관 등으로 기부해 새 주인을 찾아주는 '폐자전거 재생 사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주인을 잃고 수거되는 폐자전거는 매년 1만5000여대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1만4093대, 올해 1월부터 5월까지는 3748대가 수거됐다.
10일간 수거 안내문을 부착하고, 이후 또다시 14일간의 처분 공고를 낸 후에도 주인을 찾지 못한 자전거는 유씨와 같은 '자활 근로자'들에게 보내진다. 자활 근로자들은 복지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자활 근로 사업'에 참여하는 이들로 기초생활수급권자, 차상위 계층 등에 해당한다. 자활 근로자로 선정되면 청소, 배달, 자전거 수리 등 다양한 현장에 배치돼 기술을 배운다. 그중에서도 자전거 수리는 사회 서비스형 일자리로, 일당은 5만200원 정도다.
유씨 역시 5년 전 이곳에서 자전거 수리 기술을 처음 배웠다. 자전거 골격부터 연장 사용법까지 익히며 정식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제는 한눈에 폐자전거 재생 여부와 수리할 곳을 짚어낼 만큼 일이 손에 익었다고 했다. 유씨는 "여기 오기 전에 이것저것 많은 일을 했다. 자전거 고치는 일을 하며 나도 새 삶을 살고 있다"며 "손님들이 내가 고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거나, 고생했다며 가끔 박카스를 건네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5년 지나면 다시 뿔뿔이…이후는 과제
기초생활 수급권자들은 매달 기초 생계 급여를 받지만, 금액이 충분하지 않은 탓에 자활 근로에도 참여하고 있다. 2024년 기준 1인 가구의 기초 생계 급여는 71만3102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14.4% 인상됐지만, 여전히 생계를 유지하기 빠듯해서다.
반면 2024년 자활 근로(시장 진입형)의 일 급여는 5만7930원으로 표준 월 소득으로 환산하면 150만6180원이다. 많은 취약계층이 생계 급여를 포기하고 자활 근로로 몰리는 이유다. 서울구로삶터지역자활센터 관계자는 "자활 근로 급여가 기초 생계 급여보다 높으면 기초 생계 급여는 받을 수 없다"며 "많은 주민이 더 높은 수입을 얻기 위해 생계 급여를 포기하고 자활 근로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자활 근로 기간이 최장 60개월(5년)이라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올해로 근로 5년 차를 맞은 유씨 역시 오는 10월이면 더 이상 자활 근로에 참여할 수 없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자활 근로 의존을 막기 위해 설정한 최대 근로 기간을 넘기기 때문이다. 기간이 다한 근로자들은 1년간의 공백기를 거친 후 다시 자활근로 사업에 지원할 수 있다.
이 기간 근로자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진다. 운이 좋으면 창업을 하거나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떠나지만, 대부분 근로자가 노인 일자리에 다시 도전하거나 다시 자활 근로에 지원하길 기다리며 쉰다. 서울구로삶터지역자활센터 관계자는 "자활 근로가 끝난 이들이 각자 어디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는 센터에서 파악할 수 없다"며 "일부는 일반 일자리에 취업해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거나 일부는 노인 일자리에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기초 생계 급여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활 근로까지 끊긴 취약 계층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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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 생계 급여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자활 근로에 참여하는 이유는 생계 급여가 그만큼 충분치 않아서인데, 이들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소득이 끊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 중에서 일반 취업에 성공하거나 창업을 하는 등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는 분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소득이 줄어 경제적 어려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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