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인터뷰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시니어 산업 시장 규모는 2020년 72조원에서 2030년 168조원으로 두 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국민의 20% 이상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화 사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소비자 중에도 노인의 비중이 커질 것이고, 결국 노인을 겨냥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는 회사들이 경쟁력을 갖고 몸집을 키우게 될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5일 만난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현재 시니어 비즈니스 트렌드에 관해 '기술의 접목'을 강조했다. 그는 "DX(디지털전환)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특히 돌봄 비즈니스의 경우 인력은 부족한데 돌봄이 필요한 연령대는 늘고 있어 그 간극을 기술로 채우는 것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가 몸담고 있는 실버산업학과는 초고령사회를 대비해 강남대에서 2006년 설립한 학과다. 경영학과 노년학을 기초로 시니어 금융전문가와 시니어헬스케어 전문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고령친화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인재를 양성한다. 박 교수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사업학 석사 학위를,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땄다. 현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학과 설립 시작 당시부터 함께 하며 시니어 산업의 성장을 지켜봐 왔다.
-20년 가까이 시니어 산업의 발전을 지켜본 입장에서 주목할 만한 시점이 있다면.
▲고령친화산업법과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제정됐던 2006~2007년과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나왔던 2016년이 시니어 산업에서 두 차례의 변곡점이었던 것 같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경제성장이 둔화될 거라는 우려는 2000년대 중반에도 제기됐었다. 생산성이 줄어듦에 따라 경제 규모가 작아지니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산업을 활성화해서 경제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당시에도 있었다. 그래서 고령친화산업법이 등장한 것이다. 다만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이 나오면서 방향이 좀 틀어졌다. 예를 들어 지금 복지용구를 살 때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서 나라가 비용의 대부분을 지원해주지 않나. 그런데 18개 품목에 한정된 지원을 하게 되면서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제품이 나오는 길이 오히려 막혔다. 한 마디로 '돈주머니'를 만들어준 게 역효과를 낸 것이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나온 이후로는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 전환 붐이 일었다. 시니어 산업에도 마찬가지다. 이후에 디지털 헬스케어에 관한 연구개발(R&D)이 무척 많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인들을 위한 기술을 묶은 '에이지 테크(age-tech)'라는 개념까지 나왔다.
▲맞다. 그럼 의미에서 요즘에는 ‘플랫폼 비즈니스’가 뜨는 것 같다. 시니어 산업의 본질을 잘 몰라도, IT를 잘 알거나 유통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플랫폼 비즈니스 개념과 노하우를 가지고 테크 분야에 연결시키면 좋은 사업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 실버산업의 현주소가 어떻다고 생각하나.
▲예전보다 훨씬 더 발전했다. 젊은 층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고령자가 늘어나니까 시니어 소비자들에 대한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다만 지금은 기업들이 ‘실버’라는 단어를 지양하고 있다. 시간 여유와 경제력을 모두 지닌 세대라는 의미로 ‘액티브 시니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하자 ‘실버’보다는 ‘시니어’가 좀 더 많이 쓰이는 듯하다.
-그래도 아직 시니어 산업에 대한 개념화가 제대로 정립돼있지는 않은데, 학과에서 학생들을 모집하기 힘들지 않나.
▲대학에 지원하는 10대 학생들에게 ‘시니어’는 먼 이야기다. 게다가 대기업들이 시니어 비즈니스를 한다고 해도 기존 인력을 사업에 배치하지, 그 사업을 하기 위해서 실버산업을 공부한 사람들을 새로 채용하지는 않더라. 기업에서 시니어 사업을 담당하게 된 임직원들이 추후에 시니어 관련 대학원 과정을 듣는 경우는 있다.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우리가 2006년에 1기를 모집한 이후 지금까지 1000명 좀 안 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 중 일부가 시니어 비즈니스 스타트업에 취업했는데, 이 회사들이 최근 업계에서 입지가 커지고 있더라. 최근 MWC 2024에서 수상한 실버케어 인공지능(AI) 로봇 개발 업체 '효돌', 하이엔드 시니어 레지던스를 만드는 '지냄', 대교의 시니어 토털케어 서비스 브랜드 '대교 뉴이프', 300억원 이상의 누적 투자금을 유치한 '케어닥' 등 다양하다. 한 번 우리 졸업생을 받은 기업들은 계속 찾더라. 실버산업학과에서 전문성을 쌓은 학생들이 노인 소비자에 대한 유용한 자료를 가져오거나,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한다고 하더라.
-새로운 시니어 사업 모델이 많아지며 투자금도 몰리는 듯하다.
▲시니어 사업에 기술을 접목해 투자받는 스타트업들이 여기저기 등장하니까 투자자들도 몰린다. 이쪽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좋은 소식이긴 한데, 한편으로는 거품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지 테크라는 명목으로 투자를 받은 곳들이 다 과연 잘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기대감이 함께 든다. 액티브 시니어의 구매력이 너무 과대평가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고령화 측면에서,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는 관심이 많지만 노인 문제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정부의 우선 아젠다가 아니라서 그렇다. 당장 고령사회 정책을 보면 훌륭한 내용이 많다. 다만 담당 부서가 여러 부처인데 노인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 본인들이 하는 일을 ‘고령친화’ 사업이라고 보지 않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 고용노동부가 중장년 취업 관련 정책을 만들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데 “65세 전 생산가능인구만 우리 책임”이라는 스탠스를 갖고 있다. 최근에 전직 지원이나 고령자 취업지원 패키지 등이 나왔지만, 기본적으로 “65세가 넘으면 보건복지부의 노인일자리 사업을 알아보라”는 거다. 정책 하나하나가 다른 법률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인데, 이런 식으로라면 앞으로 계속 생길 노인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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