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려드는 환자 항의에 간호사 부담 가중
의료 공백 해결은 남은 이들이 감당
21일 충남 지역의 한 대형병원 접수실 앞. 이른 오전부터 고성이 들렸다. 전날부터 파업에 들어간 전공의들 공백으로 인해 진료가 지체된 환자가 간호사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나섰다. 간호사들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화가 난 환자들에게 사과하기 바빴다.
대학병원 전공의들의 줄사직으로 환자 대응의 최전선에 남은 간호사와 직원들은 육체적·신체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2020년 의사 총파업의 악몽이 반복되면서 의료계 내부 갈등이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4년 전에도 전공의들 주도하에 대한의사협회와 전임의 등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대형병원 의료 시스템이 마비된 바 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수술실 간호사 A씨는 “암 수술이나 급한 수술도 다 취소되고 있다”며 “환자한테 취소됐다고 전화하는 간호사가 온갖 불만을 다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런 와중에 대다수가 의사 출신인 병원 경영진은 파업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고, 오히려 환자가 줄었다며 직원들에게 휴가 사용을 권장하는 등 인건비 아끼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A씨는 “생사가 오가고 언제 암이 퍼질지 몰라 빨리 수술을 원하는 중증 환자들이 모이는 국내 최고의 병원에서 본인들의 이익 때문에 환자들을 외면하는 것이 과연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소위 ‘빅5 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에서는 전공의 이탈과 관련해 병원 예약을 취소 또는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들 대형병원은 전체 수술의 30~50% 정도를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로 전공의들이 맡았던 야간 당직은 소수의 전문의가 돌아가며 소화하고 있다.
의료공백으로 남겨진 업무들은 자연스레 현장에 남은 사람들에게 떠넘겨졌다. 충남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처방을 비롯해 전공의 업무들을 PA(진료 보조) 간호사가 대신하고 있다”며 “병원 방침이기도 하고 의사협회에서 진행하는 문제라 다른 직원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간호사들도 업무 외의 일에 시달리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여러 병원에서 간호부에 드레싱 업무와 도뇨관 삽입, 위관 삽입, 항암포트 삽입을 포함해 전공의 업무 일부를 PA가 시행해달라는 지침을 시행 중이다. 일반 간호사를 제대로 된 교육이나 훈련 없이 PA 간호사로 배치해 업무를 시키는 병원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역 대학병원 간호사 B씨는 “간호부에서 간호사 업무 외의 일을 하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다고 한다”면서도 “몇몇 특수부서에서는 업무 지연이 심해 암암리에 간호사들이 전공의 업무를 대신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국내 의료법에는 PA 간호사가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간호사가 약을 처방하거나 진단서를 작성하는 등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것은 불법이다. 2010년부터 정부 차원의 PA 간호사 제도화 시도가 있었지만 매번 의사 단체의 반대에 막혀 무산됐다.
정부는 이번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PA 간호사 투입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간호협회는 “정부와 협의를 진행한 바 없다”며 “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화 및 법적 보장과 안전망 구축을 약속하고, 이를 법 보호 체계에 명시화해야 의료공백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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