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화학소재 기업 듀폰(Dupont)이 용인에 세워질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과 연계해 2028년까지 반도체 소재·부품 생산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 증설에 2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반도체를 만드는데 필요한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감광제), 화학기계 연마(CMP) 패드, 패키징 R&D센터 등 시설 증설에 투자금이 들어갈 예정이다. 신규 인력도 100명 이상 고용할 계획이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가운데 약속받은 투자다.
듀폰은 미국이 한국에 대규모 투자 보따리를 풀 때 자주 등장하는 회사다. 반도체산업을 안정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일본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소재·부품에서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한데, 화성과 천안에 연구시설 및 생산공장을 두고 반도체 핵심소재들을 개발·생산하고 있는 듀폰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반도체업계는 2020년 일본 수출규제 당시 일본이 규제한 3대 품목 중 하나인 EUV용 포토레지스트 공급망 안정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듀폰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듀폰은 당시 포토레지스트 개발 및 생산시설 구축을 위해 한국에 약 325억원의 시설투자를 약속했다. EUV용 포토레지스트 생산을 위한 투자 집행 및 공장 증설은 완료된 상태다. 현재 제품 개발 및 테스트 단계로, 내년부터는 실질적인 생산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EUV용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기판(웨이퍼) 위에 패턴을 형성하는 공정에 사용하는 재료다. 반도체 극소형화에 꼭 필요하다. 세계에서 포토레지스트를 가장 많이 생산하고 있는 곳은 일본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계도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한다.
포토레지스트 세계 시장 비중은 일본 JSR과 도쿄융화공업이 각각 28%, 21%로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미국 듀폰이 15%로 그 뒤를 잇는다. 4~5위 역시 신에쓰화학공업(13%), 후지필름(10%)으로 사실상 듀폰을 제외하면 일본 기업들의 독무대다. 듀폰이 한국에 EUV용 포토레지스트 생산시설 규모를 키워 본격적인 생산에 나설 경우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듀폰이 생산하는 CMP 패드 역시 반도체 공정에 쓰인다. 웨이퍼 표면을 화학·물리적으로 연마해 평평하게 만들 때 필요한 부품으로 반도체 시장이 커지면서 CMP 패드 수요 역시 빠르게 늘고 있다. CMP 패드는 듀폰이 독점해온 분야다. 한 때 국내 반도체기업들이 쓰는 CMP 패드의 90% 이상이 듀폰 제품이었다. 다만 최근 SK의 반도체 소재 계열사인 SKC가 CMP 패드 생산에 나서면서 듀폰의 점유율은 과거보다 소폭 낮아졌다.
듀폰은 한국 기업과도 인연이 깊다. 듀폰이 하던 웨이퍼사업부는 SK 계열사인 SK실트론이 2020년 인수했다. SK실트론은 듀폰의 전력반도체용 웨이퍼인 실리콘카바이드(SiC) 사업부를 인수한 후 현재 웨이퍼 투자 확대를 진행 중이다. 6인치 SiC 웨이퍼를 주력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이어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8인치 SiC 웨이퍼 연구개발도 진행 중이다.
반도체업계는 기술 및 제조시설을 갖추고 산업 생태계를 키우려는 한국과 소재·부품 분야에서 일본을 견재할 수 있는 미국과의 협력이 강해질수록 향후 듀폰의 한국 투자 역시 규모가 빠르게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이번에 듀폰이 투자하기로 약속한 2000억원은 지난해 신고한 투자금의 2배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는 미국과 더불어 한국을 듀폰의 핵심 생산 및 연구개발 허브로 발전시켜 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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